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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최근 모습)
클뤼프 브뤼허 KV 감독 | |
미셸 조르주 장 길랭 프뢰돔 (Michel Georges Jean Ghislain Preud'homme) | |
생년월일 | 1959년 1월 24일 |
국적 | 벨기에 |
출신지 | 세랭 |
신장 | 183cm |
포지션 | 골키퍼 |
소속 팀 | 스탕다르 리에주(1977-1986) KV 메헬렌 (1986-1994) SL 벤피카(1994-1994) |
국가대표 | 58경기 0골 |
지도자 | 스탕다르 리에주(2001-2002) 스탕다르 리에주(2006-2008) KAA 헨트(2008-2010) FC 트벤테(2010-2011) 알 샤바브 FC(2011-2013) 클뤼프 브뤼허 KV(2013-) |
1994 FIFA 월드컵 야신상[1] | ||
미셸 프뢰돔 |
1 소개
최초의 야신상 수상자[2]
장 마리 파프와 함께 벨기에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인물. 1994년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처음으로 야신상을 수상했다. 이 월드컵에서 벨기에는 고작 16강에 그쳤는데 야신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 클럽
리에주의 세랭 출신으로 지역 최고의 팀인 스탕다르 리에주의 유스팀에 입단, 1977년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1986년까지 9시즌을 리에주에서 뛰었으며 1부리그 우승 2회와 컵대회 우승 1회등 성공을 맛보았다. 1986년에는 메헬렌으로 이적했고 1987-88 시즌 컵 위너스컵 우승을 경험했다.
1994년에는 포르투갈의 SL 벤피카로 이적했다. 프뢰돔은 벤피카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주전 골키퍼였는데, 엄청난 활약으로 팬들로 부터 '성 미셸'이라는 별명을 받기도 했다. 1999년 40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79년부터 1994년까지 15년간 58경기에 출전했다. 명성과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 기간에 비해 출전 횟수가 적은 편인데, 이유인 즉슨 벨기에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추양받는 장 마리 파프와 세대가 겹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뢰돔이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한 것은 31세인 1990년 월드컵때 부터이다.
1994년 월드컵에서 프뢰돔의 활약은 엄청났다. 벨기에는 비록 16강에서 독일에게 패퇴했으나 프뢰돔은 클라우디오 타파렐, 잔루카 팔리우카 등 쟁쟁한 골키퍼들을 제치고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 초대 야신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UEFA 올해의 골키퍼, IFFHS 선정 올해의 골키퍼를 석권했다.
4 감독
은퇴한 뒤 벤피카의 디렉터로 근무하다 2001년 1월 친정팀인 스탕다르 리에주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큰 족적은 남기지 못했고 2002년 6월을 끝으로 리에주의 감독에서 물러났다. 4년만인 2006년, 프뢰돔은 리에주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그는 06-07 시즌 벨기에 컵 우승을 이끌었고 07-08 시즌에는 자신이 현역 시절 경험했던 리에주의 마지막 리그 우승을 기록을 25년만에 깨트리고 벨기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시즌이 끝난 뒤 프뢰돔의 다음 행선지는 놀랍게도 중위권의 KAA 헨트였는데, 첫 시즌부터 리그 준우승을 거두며 60여년만에 팀 사상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09-10 시즌에는 벨기에 컵 우승에 성공하며 헨트 역사상 3번째 우승컵을 가져다 주었다.
10-11 시즌을 앞두고 프뢰돔은 볼프스부르크로 떠난 맥클라렌의 빈자리를 매꾸러 FC 포르투, AC 밀란등의 관심을 뒤로 하고 이웃의 FC 트벤테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요한 크루이프 쉴드[3]에서 아약스를 꺾으며 순초로운 출발을 시작한 프뢰돔은 컵 대회 우승을 이끌며 컵 대회의 강자 이미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시즌이 끝난 뒤 프뢰돔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샤바브 FC로 이직했다. 첫 시즌 알 샤바브의 리그 우승을 이끌어냈고, 두번째 시즌에는 컵 대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그는 재계약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고 자국의 클뤼프 브뤼허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클뤼프 브뤼허의 감독으로 프뢰돔은 14-15 시즌 리그 준우승과 유로파 리그 8강을 이끄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