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포츈(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장문 배경

미스 포츈 - 현상금 사냥꾼“감수할 위험이 클수록 현상금도 많다.”
악명 높은 현상금 사냥꾼 미스 포츈이 지나간 자리에는 총알로 벌집이 된 시체가 산을 이룬다.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미스 포츈을 미모와 실력으로 대적할 자는 흔치 않다. 그녀의 쌍권총 소리가 항구도시 빌지워터의 피비린내 나는 거리에서 울려 퍼지면 현상금 게시판에서 뜯어내야 할 종이가 하나 늘었다는 신호다.

소금기 가득한 도시, 핏줄처럼 구불구불한 미로를 감춘 도시. 빌지워터에서 악명을 떨친 이들이 모두 그렇듯 미스 포츈 또한 많은 이들의 피를 손에 묻혔다. 하지만 처음부터 피를 몰고 다니는 위험한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세라. 외딴 섬에서 자란 미스 포츈의 어릴 적 이름이다. 세라는 유명한 총기 장인인 엄마의 사랑 속에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파도소리가 노래처럼 바람을 타고 섬을 에워싸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세라는 엄마를 따라 대장간에서 방아쇠 총을 다듬고 맞춤 탄환 주조를 돕기도 했다. 전설적인 총기 제작자인 엄마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맞춤 권총은 주로 부유한 귀족들의 수집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악한 이들 역시 그녀의 권총을 탐내곤 했다.

빌지워터의 신출내기 해적 갱플랭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갱플랭크는 건방진 태도로 최고의 권총 두 자루를 만들라고 엄마에게 강요했다. 마지못해 거래가 성사되었고 갱플랭크는 일 년 뒤 총을 찾으러 돌아왔다. 그는 빨간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왔다. 처음부터 값을 치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두 눈이 두건 위로 맹수처럼 빛났다.

세라의 엄마가 만든 권총들은 예술작품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이 넋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쌍권총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정밀했다. 흡족한 얼굴로 총을 바라보는 갱플랭크에게 엄마는 “너 같은 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총이다.”라고 못 박았다. 격분한 갱플랭크는 쌍권총을 빼앗아 엄마를 쏘아 죽이고 아빠와 세라에게도 총구를 겨누었다. 총소리는 풀숲 위로 비명처럼 쏟아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갱플랭크는 총기 제작소에 불을 지른 다음 쌍권총을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총이라면 아무도 가질 수 없게 해 주마!”

세라는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 노랗던 머리는 엄마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심장을 빗겨 박힌 두 개의 총알이 뻐근하게 가슴을 조였다. 혼자가 된 아픔이리라. 세라는 부러진 쌍권총의 잔해를 주워 피가 흐르는 가슴팍으로 끌어안았다.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입을 틀어막고 겨우 기어 나온 그녀의 뒤로 재가 된 목조 건물이 지는 해처럼 무너져 내렸다.

시간이 흘러 몸은 회복했지만 세라는 몰살당한 가족들, 불타던 총기 제작소를 마음에서 벗겨낼 수 없었다.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다시는 원래의 금발로 돌아오지 않는 붉은 머리칼처럼 말이다. 끝없는 공포와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는 밤마다,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주는 건 복수에 대한 열망이었다. 세라는 망가진 쌍권총을 고치고 빨간 두건의 해적에 대해 조사하며 시간을 보냈다. 놈을 처단할 날만을 고대하며.

어느 날 배를 타고 빌지워터에 내린 세라는 부둣가에 발을 디딘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현상금 사냥에 성공했다. 마이런의 흑주를 진탕 마시고 취한 해적이 상금이 걸린 목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세라는 반쯤 눈이 풀린 놈을 죽여 현상수배 게시판으로 질질 끌고 갔다. 거기에는 공고가 가득 붙어 있었다. 세라는 닥치는 대로 공고를 뜯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생선 썩는 냄새인지, 피비린내인지 붉은 머리칼처럼 벗겨낼 수 없는 악취 속에서 일주일이 지났다. 그 새 게시판의 공고는 모두 사라졌다. 세라에게 쫓긴 악당들은 불운하게도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빌지워터의 술집, 도박판, 악당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그녀의 이름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제 세라는 미스 포츈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이름은 화려한 위장으로 세라의 의도를 숨겨주었고 사람들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빌지워터의 현상금 사냥꾼 중 한 명으로 지내는 한, 갱플랭크는 그녀의 복수를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후로 몇 년 간 미스 포츈의 후일담은 바다 안개처럼 소리 소문 없이 퍼져나갔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이야기들은 점점 더 악랄하고 화려하게 채색되었다. 미스 포츈은 은밀하게 집적거리는 한 선장으로부터 사이렌 호를 빼앗아 혼쭐을 내줬고 비단 검 해적단 두목은 직접 만든 럼주통에 처박아버렸다. 또한 학살의 부두에 정박해 있던 반쯤 부서진 레비아탄 호에 몸을 숨긴 난봉꾼을 붙잡아 끌어내기도 했다.

이렇게 끝없이 악당을 처단하고 다닌 미스 포츈이었지만 대놓고 맞서기에 갱플랭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미스 포츈은 소규모 동맹을 만들고 언제든지 자신을 도우러 올 연인들을 사귀며 복수의 날을 준비했다. 죽이기만 하는 것으로는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말 못할 굴욕과 수치 속에서 갱플랭크를 파멸에 몰고 가야만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잠들 수 있으리라. 바닷바람에 핏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미스 포츈은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빈틈 없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드디어 데드 풀 호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고 자칭 빌지워터의 왕인 갱플랭크를 몰락시킨 것이다. 인고의 세월 끝에 찾아온 달콤한 복수. 심지어 모두가 갱플랭크의 추락을 지켜보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다.

이제 갱플랭크의 시대는 갔다. 해적 선장, 깡패, 우두머리…… 힘깨나 쓴다는 빌지워터의 모든 이들이 그의 빈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게 되었다.

빌지워터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막이 오른 것이다.

빌지워터의 백색 선착장은 그곳을 가득 매운 하얀 새똥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죽은 자를 위한 쉼터로 제격인 이름이 아닌가? 빌지워터 사람들은 시체를 땅에 묻지 않고 바다로 돌려보냈다. 차가운 심해로 가라앉은 사람들의 묘비는 수백 개가 넘는 부표가 대신했다. 바닷물이 넘실거릴 때마다 죽은 자들의 이름이 일제히 흔들렸다. 어떤 것들은 이름뿐이었지만 위풍당당한 크라켄이나 풍만한 섬처녀를 조각한 부표도 있었다.

미스 포츈은 궐련을 가볍게 물고서 선착장 끝에 있는 황홀의 럼주 통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한 손에는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 같은 관에 연결된 산소 튜브를, 다른 한 손에는 녹슨 도르래로 관 뚜껑에 연결된 다 해진 밧줄을 쥐고 있었으며 쌍권총은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차고 있었다.

수평선에 내려앉은 안개 위로 달빛은 그물처럼 촘촘히 내리꽂혔다. 송장을 먹는 갈매기들이 불길하게 끼룩거리며 부둣가의 굽은 지붕에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갈매기들에게는 좋은 징조였다. 누구보다 새로운 먹잇감이 생길 신호를 잘 알아 채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왔군.” 미스 포츈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용 비늘 코트를 입은 대머리 남자가 악취 나는 좁은 골목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선착장의 쥐 떼가 남자를 쫓아오며 찍찍거렸다. 혹시나 자신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남자의 이름은 자크문트 자이글로스로 문신 형제단 중 한 명이었다. 문신을 한 해적은 많았지만 자이글로스의 문신은 그중에도 특별했다. 비단뱀, 연인들, 침몰시킨 배들, 죽인 사람들의 이름으로 온몸이 뒤덮여 있었다. 미스 포츈의 눈에는 어떤 자기소개서보다 완벽해 보였다.

자이글로스는 결연하게 저벅저벅 걸어왔지만 초조한 눈빛을 감추진 못 했다. 허리춤에 상어 이빨 모양의 긴 검을 꽉 움켜쥐고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총은 한눈에 봐도 값진 것으로 매끄러운 금속관이 달려 있었다.

“내 동생은 어디 있나?” 자이글로스가 물었다. “데리고 온다고 했잖아!”

“그거 필트오버 마법공학 소총인가?” 미스 포츈이 자이글로스의 질문을 뒤로하고 물었다.

“대답부터 해.”

“네가 먼저 대답하면!” 미스 포춘은 코웃음을 치며 도르래에 걸친 밧줄을 스르륵 풀었다. 관이 물속으로 기울며 조금 더 깊게 잠겼다.

“이 튜브가 얼마나 긴지 모르겠네. 동생이 숨을 못 쉬어 몸부림치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자이글로스는 씩씩거리더니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미스 포츈은 그의 낯빛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제길. 그래. 필트오버 제다.” 자이글로스가 총을 꺼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비싼 거네.” 미스 포츈이 말했다.

“너라면 잘 알겠군.” 조롱 섞인 말투로 자이글로스가 되받았다.

미스 포츈이 다시 밧줄을 풀었다. 완전히 잠겨버린 관에서 뽀글뽀글 기포가 올라왔다. 끼룩거리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더 커졌다. 자이글로스는 손을 높이 들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가 빌었다. “총을 줄 테니 일단 동생부터 꺼내줘.”

“얌전히 따라올 거야?”

자이글로스는 체념한 듯 웃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은데. 네가 내 배를 침몰시켰고 부하들도 전부 죽였으니까. 가족들은 빈민굴이나 감옥에 보내버렸고. 대체 뭐 때문에 그런 거냐? 마법공학 총? 아니면 현상금?”

“둘 다. 근데 다른 이유도 있어.”

“젠장. 대체 내 몸값이 얼만데 그러는 거냐.”

“돈으로? 바다뱀 은화 500닢.”

“고작 바다뱀 은화 500닢 때문에 이 소동을 벌이셨다?”

“넌 돈 때문에 죽는 게 아냐. 갱플랭크의 부하라서 그런 거지.”

“죽는다고? 잠깐. 현상금 공고에는 생포하라고 되어있을 텐데!”

“그렇지. 근데 이걸 어쩌나. 난 별로 말을 잘 듣는 편이 아니라서.” 미스 포츈이 밧줄과 산소 튜브를 손에서 놓으며 말했다. 관은 거품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심해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내 자이글로스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칼을 뽑아들고 내달렸다. 미스 포츈은 그가 코앞에 다다를 때까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쌍권총이 불을 뿜었다. 한 발은 눈을, 다른 한 발은 심장을 관통했다.

미스 포츈은 궐련을 바다에 뱉어 버린 다음 총구의 연기를 후 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걸. 그 미친놈이 야수같이 칼을 들고 달려들었어. 이건 정당방위라고.”

미스 포츈은 마법공학 소총을 주워 이리저리 살폈다. 그녀의 취향에는 너무 가벼웠지만 잘 만들어진 위협적인 총이었다. 총의 기름 냄새가 미스 포츈의 기억을 불러냈다. 제작소의 포근한 분위기,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얹던 엄마의 감촉, 따듯한 바닷바람과 웃음소리.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듯했다. 미스 포츈은 회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다에 마법공학 소총을 내던졌다. 전리품은 바다에 바치는 게 마땅했다.

미스 포츈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이글로스의 시체는 부둣가에 남겨두었다. 빌지워터에서는 시체를 바다로 돌려보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갈매기와 쥐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게다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으니 보기 드문 진수성찬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