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행검

裵行儉
(619 ~ 682)

당나라의 인물. 배인기의 아들.

655년에 장안 현령을 지내다가 무조를 황후로 삼는다는 소식을 듣고 장손무기, 저수량과 함께 반대했다가 서주도독부 장사로 좌천되었으며, 669년에는 사열 소방백을 지내면서 장인의와 함께 시험성적을 공포하는 장명성역방을 두고 시험 성적, 내용에 관한 설명인 전주를 인용하는 방법을 만들면서 관리들의 자질 기준을 정했다.

665년에는 안서도호를 지내다가 이후 망송망첸이 죽자 토번을 도모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가르친링이 정치를 하기에 도모할 수 없다고 반대해 중지하게 했으며, 이부시랑으로 옮겨 돌궐의 아사나도지, 이차복 등이 토번과 연합해 안서를 압박하자 배행검은 677년에 안무대식사에 임명되어 인질로 와있는 파사왕의 아들 니원사를 나라로 돌려보낸다는 명분으로 길을 지나가면서 돌궐을 기습해 아사나도지를 붙잡고 이차복을 항복시켰다.

679년에 예부상서, 검교우위대장군에 임명되었다가 정양도행군대총관이 되어 이문간과 함께 30여 만을 이끌게 되어 돌궐을 토벌하게 되었으며, 680년 3월에 아사덕봉직을 사로잡았다. 681년에 아사덕복념이 자립해 아사덕온부와 연합해서 노략질을 하자 조희순, 이문간과 함께 이들을 공격해 사로잡았는데, 배염이 배행검의 공로를 질투해서 사로잡은 그 두 명을 죽게 만들자 질병이 있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682년에 금아도행군대총관에 임명되어 염회단 등과 함께 돌궐을 치도록 명령받았지만 군대가 출발하기 전에 사망했다.

사람을 보는 눈은 안목이 있었고 왕거, 소미도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시절에 그들이 이름을 날리게 될 것을 알아보았으며, 양형, 왕발, 노조린 등은 이름을 날렸지만 그들은 크게 되지 못할 것이라 했고 배행검의 말대로 되었다. 또한 좌우 사람들에게 서각, 사향 등을 가지고 다니게 했지만 잃어버렸으며, 당고종이 하사한 말, 안장을 하사했다가 영사가 말을 타다가 말이 고꾸라져서 안장이 부서지자 도망갔다.

이를 알고 사람을 시켜 소환해 모두 잘못을 저질렀으면서 그러한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그렇게 심하냐고 한 후에 이전과 같이 그들을 대했으며, 아사나도지를 사로잡은 후에 마노쟁반을 얻어 장교, 병사들에게 보이려고 했다가 군리가 이를 받들고 계단에 오르다가 넘어져 깨뜨리자 군리가 두려워하면서 머리에 땅을 찧자 일부러 한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러냐고 하면서 미련을 두고 아까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당고종이 조서를 내려 재물,가축 등을 내려줬지만 친척, 친구, 편장, 비장들에게 나눠주어 며칠 만에 다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