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르 테무르

孛羅帖木兒/Бээр Төмөр/Бээру Төмөр
(? ~ 1365)

원나라의 권신. 다스바토르의 아들. 홍건적을 토벌하는 등 군사적인 면에서 활약을 했지만 아유르시리다르, 차칸 테무르, 코케 테무르 등과 내분을 일으켜 원나라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했다.

1 홍건적 토벌

아버지를 따라 종군해 홍건적을 토벌해 전공을 여러 차례 세웠으며, 아버지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스바토르가 죽자 군사를 이끌고 정형구에 머물렀다가 1358년 정월에 하남행성평장정사에 임명되었다. 3월에 유복통을 위휘에서 격파했고 진군해 복주에서 승리했다.

4월에는 진정에 군사를 주둔했다가 6월에서 무안에서부터 팽성으로 사류 등의 길을 끊어 격파했으며, 9월에는 군사를 통솔해 조주를 협공하게 하고 10월에는 광복에게 묘군을 거느려 서문으로 들어가게 하면서 자신은 북문으로 들어가 4문으로 진군해 조주를 함락했다. 1359년 2월에는 대주에서 맹본주의 군사를 격파해 산동을 점령했으며, 대도독농병사에 임명되었고 당월, 풍주, 운내의 군사를 통솔해 관선생의 군대를 격파했다.

6월에는 우룩 부카, 발랄 후제 등에게 울주에 웅거한 양성을 붙잡으라고 지시했다가 조서로 회군하게 되었지만 11월에 다시 명이 내려와 양성을 공격했으며, 1360년 정월에 양성을 추격해 비상현 동관에 이르러 양성의 군사가 달아나고 무너져 항복하자 회군해 대동에 머물렀다. 2월에 중서평장정사가 되고 3월에 흥화를 공격해 정사충을 토벌했으며, 7월에 전풍을 공격하는 것처럼 꾸며서 대주의 장수인 왕사성을 속이고 8월에 석령관 이북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다.

9월에는 기녕을 빼앗기 위해 석령관에서 군사를 보내도록 해서 성을 3일 동안 포위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

2 권세를 장악하다

10월에 기녕을 수비하라는 조서를 받아 보보, 은홍조, 고탈 등을 보냈고 차칸 테무르가 보낸 자들과 싸우게 되었지만 패했다. 1361년 정월에 다쉬 테무르, 참정 70명 등이 가서 중재하자 물러나고 9월에 보정으로 이동해 하간 이남에서 둔전할 것을 명령받았다.

1362년 2월에는 좌이가 양영조를 보내 대동에 이르러 항복하겠다고 속여 3월에 장수를 보내 예수부카에게 군사 5만에게 대동을 지키게 했으며, 베이르 테무르는 태위, 중서평장으로 승진했다가 장량필이 오자 받아들였다. 1363년 10월에 코케 테무르가 지키는 땅을 남쪽으로 침공해 진정에 웅거했으며, 원나라 조정에서는 라오데이샤를 몰아내 동승주에 안치하고 별개로 환관을 보내 베이르 테무르를 타이르면서 군중에 머물러 명을 내리도록 하자 아유르시리다르는 관리를 보내 베이르 테무르를 잡으려 했지만 베이르 테무르는 숨어 나타나지 않았다.

1364년 정월에는 사람을 시켜 숙부와 아들인 조카를 죽이고 거짓으로 모르는 척 해 조문했고 원나라 조정에서 베이르 테무르가 멋대로 날뛰자 라오데이샤의 일을 숨겼으며, 조정에서는 에센 부카를 시켜 감독하게 했고 토겐 테무르와 가까이 있었다. 에센부카가 토겐 테무르를 참소해 조정에서 꾸짖고 비방하면서 베이르 테무르는 토겐 테무르와 서로 친하게 되었으며, 사람을 보내 토겐 테무르가 죄가 없다고 했다.

3월에는 아유르시리다르가 베이르 테무르에게 토겐 테무르와 서로 통하고 규칙을 어긴 것을 용서한다면서 초스간과 논의해 토겐 테무르의 관직을 삭탈하는 조서를 청한 후에 그 군사를 나누어 사천성의 승상인 차칸 부카를 황제의 명이 아니라면서 토겐 테무르를 구원했으며, 베이르 테무르는 병권에서 파면되어 사천에서 안치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해 사신을 죽이고 명을 거부하면서 부장을 보내 토겐 테무르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대궐을 침범했다.

4월에 거용에 입성했다가 청하의 열영에 이르러 대궐을 침범하려 했고 토곤 테무르가 초스간, 박불화 등을 숨겼는데, 이들을 넘길 것을 요구하면서 군사를 물리기로 했으며, 그 둘을 넘겨받아 살해했고 토겐 테무르가 토곤 테무르에게 죄를 청하자 토곤 테무르가 사면하면서 베이르 테무르는 태보, 중서평장겸지추밀원사에 임명되어 대동을 지키도록 명을 받아 대동으로 돌아갔다.

5월에는 코케 테무르에게 베이르 테무르를 토벌하라는 조서가 내려와 코케 테무르가 휘하의 쇄주에게는 경사, 양동첨에게는 거용에서 수비하게 하면서 코케 테무르는 태원에서 군사를 통솔했는데, 7월에 베이르 테무르가 토겐 테무르, 라오데이샤와 함께 대궐을 침범했고 이에 아유르시리다르가 청하, 예수, 불란해 등이 창평에서 맞섰지만 베이르 테무르는 양동첨을 전사시키고 이들 모두를 격파했다.

아유르시리다르를 쫓아 습격하려 했지만 라오데이샤가 이를 멈추게 했고 베이르 테무르는 태보, 중서좌승상이 되어 나라의 권세를 장악했으며, 8월에 개부의동삼사, 상주국, 녹군국중사, 태보, 중서우승상이 되어 천하의 병마를 통솔하게 되었고 야유르시리다르를 조정에 돌아오도록 해서 수 차례 사신을 보냈지만 사신들은 태원에서 붙잡혀 억류되었다.

3 황태자파의 반격과 죽음

1365년에 아유르시리다르가 영부, 감숙, 요양, 섬서 지역과 코케 테무르에게 군대를 보내 베이르 테무르를 토벌해달라고 했으며, 베이르 테무르가 분노해 황후를 궐 밖으로 내보내 100일 동안 가뒀다. 베이르 테무르는 토겐 테무르에게 상도에 있는 아유르시리다르를 토벌하도록 하고 예수에게는 코케 테무르를 남쪽에서 막으라 했는데, 예수가 주저해 나아가지 않다가 영평으로 되돌아가 사람을 보내 서쪽으로 태원, 동쪽으로 요양과 연결해 내통했다.

베이르 테무르는 보안을 의심해 죽이고 요바얀 부카를 보냈지만 예수가 통주에서 요바얀 부카를 죽이자 분노해 스스로 통주로 나왔다가 3일간 큰 비가 내려 되돌아갔으며, 답답해 라오데이샤와 함께 하루종일 연회를 베풀어 술을 마시고 사람을 죽이자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싫어했다.

화상이 토곤 테무르의 밀지에 따라 상도마, 김나해, 바얀 다르, 테쿠시 부카, 후르 쿠다, 홍보보 등과 베이르 테무르를 죽일 모의를 꾸몄으며, 7월에 토겐 테무르가 사람을 보내 상도에서 이겼음을 알렸고 베이르 테무르는 일어나 입궐해서 상주해 아뢰한 후에 연춘각 이수에 이르렀다가 바얀 다르의 공격을 받아 참수되고 상도마, 김나해 등도 베이르 테무르를 공격해 베었다.

그의 일당들도 모두 죽임을 당하고 다음날에 그의 수급은 함에 넣어 사신을 태원에 보내 아유르시리다르를 조정에 돌아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