樸不花
(? ~ 1364)
원나라의 환관. 고려 출신으로 왕불화(王不花), 박티무르부카(朴帖木兒不花)라고도 한다.
기황후가 미천한 신분일 때 같은 마을에 살아 서로 의지했고 기황후가 궁에 들어갔다가 황후가 되었고 박불화는 환관이 되어 궁에 들어와 기황후를 섬겨 총애를 받아 여러 번 승진해서 영록대부, 자정원사를 지냈다.
1358년에는 대도에 기근, 역병이 들고 하남, 하북, 산동의 군현은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이 많아 죽는 자가 많았는데, 박불화는 명성을 높이기 위해 황제 토곤 테무르에게 땅을 사서 그들을 묻어달라고 청했다. 토곤 테무르와 여러 궁으로부터 각종 물품을 차등있게 하사받아 만안수경사에서 무차대회를 열어 시체를 가져온 사람들에게 돈을 주었다.
1360년 4월에 매장된 사람이 20만, 소비한 금은 2만 7090여 전, 소비한 쌀 560여 석이었으며, 대비사에서 수륙대회를 3일 동안 개최해 병든 백성들에게 약을 주고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 자에게는 널을 지급했다.
1360년에는 초스간이 승상이 되자 초스간과 함께 호응해 사방의 인물에 대한 논공행상을 모두 감춰 보고하지 않았으며, 1363년에는 왕후(토군)과 함께 탄핵을 받았다가 기황후의 비호로 탄핵했던 자들이 좌천되었다. 박불화는 기황후의 힘으로 집현전대학사 겸 숭정원사가 되었고 라오테이샤가 탄핵에 힘쓰다가 좌천되어 베이르 티무르의 군영으로 돌아갔는데, 박불화는 코케 테무르의 지원에 의지하면서 초스간과 함께 베이르 테무르가 라오테이샤를 숨긴 것을 원망해 그 두 명이 음모를 꾸민다고 모함했다.
그래서 1364년에 베이르 테무르의 관직을 빼앗고 사천으로 귀양가도록 하는 조서가 내려졌지만 베이르 테무르는 이를 따르지 않았으며, 앤 테무르 등이 베이르가 무고인 것을 알리거나 조정에서도 그의 세력을 막지 못할 것을 염려해 정치를 가로막고 말로 황제를 현혹했다는 죄로 감숙에 유배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대도에 남았다.
베이르 테무르가 군사를 이끌고 간 후에 토곤 테무르에게 초스간, 박불화를 넘기면 군사를 물리겠다고 하면서 박불화는 토곤 테무르의 손에 베이르 테무르에게 인도되었다가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