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by Clancy.
본명은 로버트 클랜시(Robert Clancy). 가톨릭 세례명은 로베르토. 아일랜드의 임윤택.
클랜시 브라더스 멤버인 패디 클랜시, 톰 클랜시#s-2의 동생이며, 리엄 클랜시의 형이지만 프로 가수는 아니고, 보험회사 사장이다. 그런데도 가수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1960년대에 이미 솔로 앨범을 냈고, 1969~1971년과 1977~1998년까지 클랜시 브라더스 정규 멤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7~1998년이면 클랜시 브라더스가 해체 후 재결성된 이후로 계속 멤버였다는 뜻이다.
1927년 카운티 티퍼레리 캐릭 온 수어의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보험업에 종사하다가 1960년, 1집 앨범을 내면서 음악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업은 보험업. 1961년과 1964년에도 한 차례씩 여동생 페그(Peg)와 함께 앨범을 냈다. 다루는 악기는 기타와 하모니카.
1969년 토미 메이컴의 탈퇴로 한 자리가 비게 된 클랜시 브라더스에 합류하였고, 1969년과 1970년에 한 차례씩 앨범을 냈다. 그러나 1971년 동생 리엄과 한바탕 싸운 이후 그룹을 탈퇴했고, 1974년에 앨범을 하나 내긴 했지만 계속해서 보험회사 경영을 이어 나갔다. 이 무렵부터는 밴조와 바우란(아일랜드 타악기)도 다루게 되었다.
1974년 클랜시 브라더스가 공중분해되었다가 1977년 재결성되었을 때 패디, 톰, 조카 로비 오코넬과 함께 멤버로 다시 합류했다. 토미 메이컴과 루이스 킬런이 담당하고 있던 밴조 포지션을 맡아서. 1977년 재결성된 클랜시 브라더스는 풀 타임 그룹이 아니고 1년에 3번씩만 모여서 활동하고 나머지 기간은 각자 따로 활동하는 시스템이었으므로, 보비 클랜시는 여전히 보험회사 경영이 주업이었다.
1984년 리유니언 투어 때는 잠시 그룹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6년부터 다시 재개했다. 원래 멤버들로 복귀한 클랜시 브라더스는 이후 1988년에 앨범을 하나를 냈지만, 본인들도 쓰레기라고 평가할 정도로 조잡하고, 대부분의 곡들이 예전에 정말 미친 듯이 마르고 닳도록 불렀던 곡들이라서 본인들조차도 별로 가치를 두는 앨범은 아닌 듯.
990년 톰 클랜시가 위암 진단을 받았다. 이미 투어 일정은 다 짜 놓았는데 그걸 빵꾸를 낼 수는 없는 관계로, 1988년 이후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있던 리엄 클랜시가 그룹에 복귀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 때는 그냥 땜빵 차원이었지만... 톰 클랜시의 상태는 결코 호전되지 않았고, 11월 3일 톰은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톰 사후, 1991년 봄부터 리엄이 톰을 대신하여 멤버로 합류하였다.
패디, 보비, 리엄, 로비 오코넬은 1991년 봄부터 클랜시 브라더스로 활동을 재개했고, 아이리시 페스티벌 크루즈(Irish Festival Cruise)라는 행사에 출연하고, 리엄 클랜시의 절친인 밥 딜런의 데뷔 30주년 기념 행사에 토미 메이컴까지 피처링하여 출연하고, 1995년에는 스튜디오 앨범도 발매하는 등 5년간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 그러나 참으로 애석하게도,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의 분배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으니, 그야말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결국 1996년 봄 마지막 투어를 끝으로, 리엄과 로비 오코넬이 그룹을 탈퇴하면서 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
이후 패디와 보비는 보비의 아들로써 마지막 투어 때 베이스 연주를 맡기도 했던 핀바 클랜시와 함께 3인조로 그룹의 명맥을 잇긴 했으나, 사실상 1996년을 끝으로 그룹은 해체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1998년 패디 클랜시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죽음을 앞두고 리엄과 패디, 보비는 서로 화해했고, 마지막으로 셋이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포크계의 레전드를 망쳐 놓은 흑역사는 어쩌려고 패디 클랜시의 죽음으로 클랜시 브라더스는 해체되었다. 리엄이 돌아온다면 모를까 보비 하나뿐인데 클랜시 브라더스란 말을 쓸 수는 없잖아?
그리고 보비 클랜시는 핀바, 에디 딜런과 함께, 3인조로 활동을 이어 나간다. 클랜시 브라더스의 마스코트인 흰 스웨터를 계속 유니폼으로 입었다. 이 트리오는 나름대로 선전했으니, 앨범도 몇 장 내고, 공연도 많이 다니고, 멤버들 개개인의 솔로 앨범도 내면서, 나름 성공적인 활동을 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과거 클랜시 브라더스의 영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 물론 보비 클랜시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것이, 전체 앨범 17장 가운데, 클랜시 브라더스 앨범을 제외한 앨범 8장 가운데 4장을 이 기간에 냈다!
2000년대의 보비 클랜시.
보비 클랜시는 1999년부터 특발성 폐섬유증이라는, 폐가 섬유질화되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에 걸린다. 그래도 보비 클랜시는 끝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가 호흡 곤란으로 서서 공연하기 어려워지자 의자에 앉아 공연하며 2년을 더 버티다가, 2001년 말 정말 도무지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보비 클랜시는 2002년 9월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보비 클랜시 목소리는 그냥 평범한 남자 목소리. 음역대는 형들처럼 중저음도 아니고, 동생처럼 완전 최고음도 아닌 중간 음역대이다. 형들 같은 걸쭉함이나 동생 같은 감미로움 같은 특별한 색채는 없고, 그냥 평범한 목소리. 물론 결코 노래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잘 하긴 하는데, 뚜렷한 특성이 없다는 것. 형제들 가운데 가장 키가 크다. 180대 중반일 것으로 추정됨.
악기는 앞서 언급했듯 기타, 하모니카, 밴조, 바우란을 다루었다. 기타는 동생 리엄과는 달리 차분한 핑거링 중심으로 치며, 밴조는 토미 메이컴과 유사한(애초에 토미 메이컴이 맡았던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지판이 긴 5현 밴조를 친다. 하모니카는 형 패디처럼 10홀짜리를 쓰는데 키가 큰 관계로 손도 커서 손으로 하모니카 전체를 감싸고 분다. 비브라토는 아주 심하게 넣는 편.
아마추어 가수인 관계로 전문 가수인 형들이나 동생보다 연예인으로써 두드러진 면은 없지만, 두 가지 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는 특발성 폐섬유증으로 건강이 아주 나쁜 상태에서도 의자에 앉아서까지 공연을 강행한 열정과 의지의 아티스트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아일랜드의 임윤택이라 하겠다. 둘째로 클랜시 브라더스가 1977년에 재조직되어 1998년에 해체되기까지 21년간 클랜시 브라더스의 시즌 2 내내 함께했던 멤버라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리유니언 투어 기간 1년 반을 제외하면 언제나 그룹과 함께하며 맡은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했다. 보비 클랜시는 당장 클랜시 브라더스가 밥 딜런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나왔을 때도 엄연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던가? 결코 전문 연예인이 아닌 아마추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