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Wilhelm Friedemann Bach
1710~1784
바흐가 프리데라고 부르며 가장 사랑했던 큰 아들로 바흐의 자식들 중 음악적 재능이 가장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었고 윗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해 다른 형제들에 비해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프리데만은 당시 가장 훌륭한 오르간연주자였을 뿐만 아니라 박식하고 수학과 철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드레스덴과 할레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며 교사와 같은 직업을 원했는데 1774년 프리데만은 프리드리히 2세의 여동생인 안나 아멜리아의 도움으로 베를린으로 가 교사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당시 궁정 작곡가였던 요한 필리프 키른베르거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게 되었고, 결국은 부친의 친필원고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프리데만은 칸타타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곡을 많이 남겼는데 여기에서 그의 독창성과 천부적인 재능을 알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