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福
생몰년도 미상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서불(徐市)[1]라고도 한다.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었고 명령을 받아 어린 남녀 수천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가서 불로초를 구하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에게 불로초를 찾게 한 것이나 서복에 관련된 전설이 있는데, 대완국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까마귀가 여러 차례 풀을 물고 와서 죽은 사람의 얼굴에 덮으면 모두 살아나자 관리로부터 진시황에게 알렸으며, 진시황이 사신을 보내 풀을 가져가서 귀곡자에게 물었다.
귀곡자는 동해의 조주에서 자라는 불사초로 경전에서 자라 양신지라고도 부른다고 이야기했으며, 진시황은 이 풀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 서복을 보냈지만 서복은 조주를 찾아 떠난 뒤에 돌아오지 않아 나중에 그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서복은 애초부터 불로초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아예 진시황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용왕의 명을 빙자하여 어린 남녀 수천명과 각종 기술자들을 요구하여 데리고 떠난 것이며, 동쪽 어느 섬에 자기의 왕국을 세웠다고도 한다.
동쪽으로 간 이후의 행방에 대한 전설로 그가 일본, 대만 또는 제주도(!)에 도달했다는 것이 있다. 17세기 조선 문인 박인로의 '선상탄'에 보면 '진시황 때문에 서복이 일본에 나라를 세워서 그 후손들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되었으니 이게 다 진시황 탓이다!'하고 탄식하는 구절이 있으며, 제주도에도 서복이 닿은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닷가가 있어서 중국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제주도의 지명인 서귀포시도 서복이 다녀갔다(徐巿過之)는 글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심희가 도를 깨우치면서 서복이 사신으로 파견되어 이 때 서복은 백호가 모는 수레를 타는 모습으로 만나 함께 나타난 사마생, 부연 등과 함께 심의를 맞이해 하늘로 올라갔고 이 때부터 사람들이 서복이 득도해 신선이 된 것을 알았다는 것이 있다.
당나라 때 등주의 바닷가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복에게 배알했는데, 어떤 선비가 어떤 부인에게 그 광경에 대해 묻고 서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건에 대한 것과 약을 치료해줄 것을 청했다. 이 때 서복은 그에게 좋은 밥을 주고 선비는 적다고 했지만 서복은 그 밥을 다 먹으면 또 주겠다면서 아마도 다 못 먹을 것이라 했는데, 선비는 연이어 삼켜 여러 그릇을 먹은 듯이 배가 불렀고 작은 그릇에 담긴 술을 마셨지먼 곧 취했다.
다음날에 그 선비에게 검은 색의 여러 알을 먹게 했고 선비가 약을 다 먹자 검은 색의 물과 같은 설사를 여러 번 하고 병이 바로 나았으며, 선비가 남아서 섬길 것을 청하자 관직에 있기에 이 곳에 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 선비에게 황색의 약 한 자루를 주면서 돌아가서 아픈 사람을 만나면 도규(刀圭. 약을 드는 약숟가락)로 조금만 떼어먹으라 했으며, 서복은 선비를 등주로 보냈고 선비는 당현종에게 약을 헌상하고 이 일을 아뢰었고 현종이 병이 있는 사람에게 복용시키자 모두 다 나았다.
관련 사료
- 태평광기
- 선전습유
- 광이기
- ↑ 市'시' 자지만 '아닐 불不'의 이체자로 보아 '불'로 읽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