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우

聶友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문관으로 자는 문제(文悌).

예장군 신감현 사람으로 젊어서 현리가 되어 우번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현의 공조가 되었으며, 건업에 갔을 때 제갈각이 그를 친구로 여겼기 때문에 이름을 알렸다. 242년에는 육개와 함께 주애, 담이의 정벌의 임무를 맡았으며, 귀환 후에는 단양태수로 임명된다.

평소에 제갈각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253년에 제갈각이 위를 공격하려고 하자 다음과 같은 간언을 한다.

대행황제는 본래 동관을 막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계획은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대업을 보좌해 선제의 유지를 완성하며 적군은 먼 곳으로부터 사자를 보내고 장사들은 위엄과 덕망에 의지하고 있으며, 직접 출정해 목숨을 바쳐 하루 아침에 비상한 공을 세웠는데, 어찌 종묘의 신령과 사직의 복이 아니겠습니까? 마땅히 병사들을 안배해 날카로움을 기르도록 하고 기회를 봐 출동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들이 승리의 기세를 타고 또 대대적으로 출병하려고 하는데 천시로는 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임의로 자신의 생각을 키우고 있으니, 저의 마음은 불안합니다.

하지만 제갈각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신성을 공격했다가 패배했으며, 그가 패배해 돌아오자 섭우는 그가 죽을 것을 알고 등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사람이 세력이 강성할 때는 냇물과 산의 근본을 뽑을 수 있지만, 하루 아침에 실패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사람들의 감정이 각양각색이 됩니다. 이런 일을 말하면 슬퍼 탄식하게 됩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제갈각은 손준에게 살해당했으며, 손준은 섭우를 경계해 그를 울림태수로 임명하려고 하자 섭우는 그 일을 걱정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태평광기에는 선실지 괴지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젊을 때 가난했으며, 일찍이 사냥을 나갔다가 흰 사슴 한 마리를 발견하고 활을 쏴서 명중했다. 명중한 화살을 보니 화살이 가래나무에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