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충

1 成蟲

완전히 자라서 생식 능력을 가진 곤충을 뜻하며, 유충 다음 단계로 사람에 비유하자면 성인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2 成忠

(? ~ 656)

백제의 인물. 정충(淨忠)이라고도 하며, 성씨는 백제의 왕족 성씨인 부여(夫餘) 다..

좌평으로 656년 봄 3월에 의자왕이 궁녀들을 데리고 향락에 빠지자 성충은 이를 적극적으로 말렸으며, 의자왕이 노해 성충은 감옥에 갇히면서 의자왕에게 간언하는 자가 없어졌다.

성충은 옥에서 야위어 죽었는데, 죽기 전에 육로로는 침현을 지나지 못하고 수군은 기벌포의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 험준한 곳에 의거해 막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의자왕은 그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신라군, 당군의 침입을 허용하고 패했으며,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고 탄식했다.

662년 당시 일본의 평가를 보자면 연개소문에 대해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당나라에 위징과 더불어 당대의 준걸로서 이름을 만리에 진동시켰다'라는 쇼토쿠 태자의 아들인 야마시로 황손의 언급이 있다.한국에서 비교적 묻혀서 그렇지 당대 아주 뛰어난 네임드와 어깨를 견주는 위명을 가지고 있었다.

2.1 기타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성충은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夫餘氏)로 윤충이 그의 동생이라고 한다.

여기서 성충은 연개소문을 협박해 김춘추와 결렬시키고 여제동맹을 체결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1]

연개소문을 설득시키고 김춘추에게도 한방 먹여준 성충의 능력을 잘보여주는 일화라고 할수 있다. 이후 임자(백제)의 침소를 받아 의자왕에게 박대당해 뜻을 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상고사에는 이 사건을 어기서 인용했는지 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신용할 수는 없어 보인다. 다만 신채호는 지금은 전하지 않는 사료들을 보고 실제 그것들을 인용한 것이 몇몇 곳에서 보이고 있어 그런 사료들에서 인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 말 청구영언에서 성충의 시조 2수가 나오지만 후대의 위작이라는 견해가 많다.

사극 대왕의 꿈에서도 성충이 김춘추와 연개소문의 회담에서 등장했지만 이 사료에서 보여준 조목 조목 단점을 지적해 연개소문이 신라와 결렬시키는 것은 안나오고 먼저와서 동맹 이야기를 선수를 했지만 말빨이 뛰어난 김춘추에게 정면승부에선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밝혀진 사실과도 많은 괴리가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인은 성충에 대한 단편 소설인 좌평 성충을 저술했으며, 현대에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소산에 있는 사당인 삼충사에서 흥수, 계백 등과 함께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모셔지고 있다.

3 盛沖

성충(삼국지) 항목으로.
  1. 연개소문과 김춘추 회담 당시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해서 너희(고구려)가 신라와 손을 잡으면 우린 당과 손잡아서 후방 원조해줌.신라보다 우리가 더 길터주기 쉽고 원조가 손쉬우니 잘생각해라!라고 대놓고 협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