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충

允忠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윤충은 백제의 장군으로 대야성을 점령한 적이 있고, 김춘추의 사위이자 이찬인 김품석을 죽인것으로 유명하다.

2 대야성 전투

642년 의자왕은 신라의 40여개성을 뺏은뒤 신라의 서쪽 방어선을 사실상 끝이라고 할 수 있는곳까지 밀어버리기 위해 윤충이 대야성을 공격한다.

다음은 삼국사기에 적힌 내용이다.

《삼국사기》. 二年 ... 八月 遣將軍允忠 領兵一萬攻新羅大耶城  城主品釋與妻子出降 允忠盡殺之 斬其首 傳之王都 生獲男女一千餘人  分居國西州縣 留兵守其

끝 문장 완결이 좀 이상한건 넘어가자

뭐 대충 해석하자면 642년 8월에 윤충이 1만으로 대야성을 공격했고 성주 품석이 항복했으며 그와 아내[1] 의 목을 잘라 서울(사비를 의미한다)로 보냈고 남녀천명을 잡아 서쪽으로 보냈으며 군사를 두어 지키게했다는 것이다.

윤충은 이 공으로 말 20필 곡물 1천석을 하사받았다. 이후 대야성은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서야 겨우 다시 신라의 손에 돌아왔고 그전까지 계속 신라의 방어선이 압독주로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3 죽음

2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조선상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누명을 쓰고 죽었다는 설이다. 조선상고사에서 윤충은 당의 월주를 경략해서 그 지역을 점령하는데(?), 신라의 사주를 받은 간신의 모함으로 백제로 불려갔고 이후 당이 월주 지역을 다시 점령하자 이에 울화로 인해 죽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지방에서 내려오는 전설인데 672년 신라군의 공격에 가림성에서 왕자들과 저항하다가 전사했다는것이다. 재밌는건 672년이면 백제의 멸망후이다.그러면 백제 멸망후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이 도독으로 있던 당의 괴뢰국인 웅진도독부에 윤충이 속해있다는것인데..

뭐 둘 다 정설은 아니기에 알아서 판단하길 바란다.

4 기타

신채호조선상고사에 의하면 성은 부여씨로 백제의 왕족이고 백제의 충신 성충의 동생이라고 하나 출전이 불분명해 확실치 않다.
대야성 함락 이후, 김품석과 그의 아내의 시신은 5년뒤 김유신이 사로잡은 백제장수 8명과 교환되었다. 목 베었다면서 5년간 보존한거 보면 그리 막대한것 같진않다 생각해보니 그럴라면 애초에 왜 벤거지

삼국사기와 달리 조선상고사에서는 좀 더 자세히 적혀있는데 삼국사기와 크게 다른것은 성내에서 김품석의 반대세력이 백제군에 내응했다는것이 나온다.
  1. 고타소의 아빠는 무열왕 오빠는 문무왕혈통이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