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표법

lex duodecim tabularum
十二表法

1 개요

본래 고대 로마관습법 불문법 사회였으며, 재판이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법은 귀족인 파트리키들만 정통했고 민중들은 법과 관습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래서는 불공평하다는 민중들의 불만이 많아지자 십이표법이 만들어졌다.

십이표법은 그 간 로마의 관습법을 정리하고 동판에 새기고 비석에 달아서 시장에 내걸어 모든 로마인이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십이표법이라고 해서 12개 조항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12개의 동판에 새겨서 비석에 달아놨기 때문에 12동판법(銅板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현재는 십이표법 원판이 남아있지 않아서 실제로 동판에 새겨졌는지 상아나 목판에 새겨졌는지도 불확실하다.

때문에 귀족들이 제멋대로 재판한다는 불만은 희석되었으나, 애초에 법 자체가 귀족들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서 별로 이득은 되지 않았다. 이는 한동안 지속되었으며 후일 제대로 된 실정법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개선되게 된다.

키케로는 어렸을 때 이것을 애창 가요로 즐겨 불렀다고 한다.

2 내용

기원전 390년경 갈리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일어난 화재로 십이표법의 원판이 소실되었다. 따라서 후세의 사료에 단편적으로 인용된 것으로만 남아 있을뿐, 원판은 전하지 않아 남은 사료로 대략적인 내용만 추측할 뿐이다. 십이표법의 조목들을 보면 현대 기준에서 고대가 얼마나 무서운 사회였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으나, 당대 시대상을 고려할 시 이를 오직 로마만의 악습이라 치부하는 것은 단순한 억측에 불과하다.

  • 기형아를 죽이는 것은 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속하게 죽이는 게 권장되었거나, 아예 죽이는 것이 의무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으며, 선천적 기형아나 장애아를 살해하는 것은 고대 여러 문화, 여러 국가에서 당연시되었다. 다만 유년기에는 장애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후 충분히 성장해서 외부에 알려진 아이를 살해했을 경우에는 살인죄로 처벌된다.[1]
  • 아버지가 자식을 노예로 3번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
아버지가 자식을 노예로 파는 게 인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가부장이 가족들에 대한 절대권 내지 생사여탈권을 소유하고 있던 것의 연장선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부모가 생존을 위해 자식을 팔아 넘기는 것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흔한 일이었다. 다만 이 십이표법에 나온 내용은 합법적이었다는 것이 차이점.
  • 맨앞에 뭔가 몹시 뽀대나는 규정이 있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먼저 나오는 규정이 '원고가 법정으로 소환하면 피고는 출석하라'라는 것이었다.
  1. 다만 이런 경우 지적장애 3급과 같이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응이 불가능한 레벨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