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이 쓴 대체역사소설.
유럽 대륙의 인구 거의 모두가 흑사병으로 몰살(...)당해서 아시아가 세계패권을 쥐었다는 가정하에서 쓰여진 소설이다. 그렇기에 작중 유럽인으로 보이는 인물은 몇 차례밖에 나오지 않는다. 1부에서 볼드와 조우한 적발벽안의 중년 남성, 4부에서 사이예드 압둘 아지즈의 가문에서 근친혼을 통해 대를 이으며 사육되고 있는 백치 노예, 9부의 시점 조금 전 발견된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폴리네시아 원주민들과 비슷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인근 섬의 원주민들.
총 10부로 나누어져 있다. 두께가 상당하고, 가격도 상당히 비싼데 용케 번역되었다 싶더니 번역 출판에 목마른 한국 SF팬계에서도 사장되었다. 리뷰가 드물 정도다. 그나마도 재미 없다는 평가나 오리엔탈리즘이 심하다는 평가가 주류. 게다가 번역도 가독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필력은 꽤나 좋은 편. 애당초에 이 작가가 미국 SF소설계의 거장이라서..
윤회사상으로 바탕으로 쓰여져있다. K, B, I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닌 3명이 윤회를 거치면서 살아가는 삶을 매끄럽게 그려낸 소설으로, 이들이 역사를 바꾸어가는걸 보여준다. + S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닌 이가 이들, K, B, I의 매번의 삶에서 고통의 전달자로 등장한다.
참고로, 한국에 대한 취급이 안습하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별로 등장도 안하다가 어느새 중국의 속국이 되어있다. 일본도 안습하긴 하다. 총포도 없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실제 역사처럼 임진왜란을 일으키질 않나, 그리고는 만력제에게 역관광 당하다가 명나라가 잉저우, 그러니까 잉카를 발견하고 일본인들이 북아메리카로 이민가질 않나... 어이 없는 것은 그러면서도 에도 막부 때의 충신장이 민담으로 등장한다. 좋은 말로 하면 저자의 풍부한 지식, 나쁘게 말하면 저자의 잡동사니 모음집. 미국에서는 잘 팔린 모양이더라지만.
연대표의 서력은 이슬람력 기준이다. 따라서 서기 622년이 원년인데, 이슬람력은 평균 355일을 1년으로 하므로 매년 10일씩이 서기와 차이가 난다. 때문에 연대표상의 1423년은 원년의 서기 622년을 더하고도 다시 약 39년을 제하여야 실제의 우리 서기 연대가 나온다. 게다가 이 계산법에 의하면 1423년은 2006년인데, 연대표상으로는 2002년으로 나온다.
스토리
1권 1부는 몽골인 볼드(B)와 강제로 붙잡혀와 거세당한 뒤 환관이 된 흑인소년 키우(K)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자의 말을 빌리면 이들은 '우연히 만난 남남'이지만 이후 21세기가 될 때까지 지난한 인연을 엮어나간다. 이 사이에 I에 해당하는 인물인 일리가 나오지만 1부라서인지 비중이 떨어진다. 정화가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의 S는 센이라는 노예 상인으로, 볼드와 키우를 팔아넘긴 인물이다.
2부는 B가 환생한 비하리(여)와 비스타미(남), K가 환생한 코킬라(여)와 키아(암컷 호랑이)와 술타나 카티마, I가 환생한 인세프와 이븐 에즈라의 이야기가 무굴 제국 치하의 인도에서 무주공산의 개척지인 옛 프랑스 땅의 이슬람 식민도시 개척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어진다. 이 이야기에서 코킬라가 살인을 저질러 금수인 호랑이(키아)로 환생하게 되며, 비하리가 환생한 비스타미는 그런 키아를 보고 강렬하지만 생소한 인연과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인세프, 비하리와 코킬라가 동시대의 인물이며, 비하리 사후 코킬라도 사망한다. 비스타미가 먼저 환생한 다음 키아와 만나고, 키아는 곧 사망해 술타나 카티마로 환생한다. 그 뒤 술탄과 술타나 카티마의 밑으로 들어갔을 때 비스타미를 만났던 I가 의사이자 과학자인 이븐 에즈라이다. 이 글에서의 S는 사이드 다르야로, 알 안달루스(안달루시아. 지금의 스페인 동부 지역)의 군주이며 k, B, I의 땅을 침공한다.
3부는 K가 환생한 베트남 출신 중국 해군 제독인 케임, I가 환생한 함대의 선의인 이친, B가 환생한 '잉저우瀛洲'(잉주, 남아메리카의 중국식 호칭)의 원주민 소녀 버터플라이의 이야기다. 표류 중에 우연히 잉저우를 발견한 케임이 버터플라이를 만나고 버터플라이의 죽음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4부는 B가 환생한 바흐람, K가 환생한 칼리드, I가 환생한 이왕을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중심도시 사마르칸트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문난 연금술사인 칼리드와 그의 사위인 바흐람, 티벳 출신 학자인 이왕의 연구와 발견을 통해 유럽인들이 르네상스 시대 이후 밝혀낸 과학의 원리가 속속들이 '발견'된다. 이 시기가 '쌀과 소금의 시대'에서는 사실상 세계적 대변혁의 시발점이 된다. 이 글에서의 S는 사이예드 압둘 아지즈로, B, K, I가 사는 나라의 칸이다. 멋내기만 좋아하는 무능한 군주의 전형으로, 모두 사망한 뒤 다음 윤회를 기다리는 동안의 공간인 바르도에서 K에게 두들겨 맞는다(...). 왜냐하면 매번의 인생마다 너무나 찌질하게 K, B, I의 발목을 잡기 때문에.
5부는 B의 환생인 일본인 무사 부쇼, K의 환생인 왐품 키퍼, I의 환생인 이아고게가 아메리카 북부에서 중국인들의 침략에 직면한 일본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연합인 호데노사우니 연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권 1부(6부)는 B가 환생한 바오쑤, K가 환생한 항저우 출신의 과부 캉통비, I가 환생한 무슬림 의사 이브라힘 이븐 하삼 '알 란저우'의 이야기이다. 1권 4부에서 끈끈한(?) 관계를 보여준 K와 I가 6부에서는 아예 부부가 되어 란저우에서 무수한 철학과 인문학적 지식을 상호 논쟁을 통해 쌓아간다. 후대의 언급을 보면 알 란저우 부부가 남긴 업적은 '쌀과 소금'의 세계에서 중대한 과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듯 하다. 이 글에서의 S는 캉의 막내아들인 쉬로, 멍청함으로 그녀를 괴롭힌다.
2권 2부(7부)는 B가 환생한 발타와 후디에(蝴蝶), K가 환생한 케랄라와 키요아키, I가 환생한 이스마일 이븐 마니 알디르의 이야기이다. 발타는 '트라방코르 연합'이라고 불리는 남부 인도의 강력한 국가연합체의 학자이며, 케랄라는 트라방코르의 군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스마일은 본디 오스만제국의 관료였지만 트라방코르에 초청되어 오게 된다. 7부의 이야기는 나중에 잉저우로 넘어가 잉저우의 대홍수 시대에 후디에라는 중국인과 키요아키라는 일본인이 서로 접촉하는 이야기도 전개된다.
2권 3부(8부)는 '아수라의 전쟁'으로 불리고 있다. B가 환생한 바이, K가 환생한 쿠오, I가 환생한 이와가 중국의 징집부대 장교로 종군해 무슬림들과 싸우고 있다. 잉저우와 아시아 전역에 식민지를 두고 패권을 넓힌 중국인과, 중동과 유럽과 아프리카와 잉저우 북부를 장악한 이슬람 세계가 세계 패권을 두고 대전쟁을 벌인다.
2권 4부(9부)에서는 옛날 술타나 카티마(1권 2부의 K의 환생자)가 개척한 도시인 느사라를 중심으로 B의 환생자인 부두르, K의 환생자인 카라나 파우와즈, I의 환생자인 이델바가 서로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슬람 세계가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의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여성해방론과 맞물려 전개되는 것을 보여준다.
2권 5부(10부)에서는 B의 환생자인 바오신후아(保新華)와 K의 환생자인 쿵지엔궈(孔建國), I의 환생자인 주 이사오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막대한 인명피해와 정치, 경제적 혼란으로 피폐해진 중국의 '혁명'을 위해 움직이는 혁명가로 그려진다. 베이징 지하정치조직의 리더였던 쿵지엔궈는 바오, 주 이사오 등과 함께 노력해 혁명을 성공시키지만 암살당하고, 쿵의 죽음으로 바오는 크게 낙담하게 된다.
이후 주 이사오는 중국의 혁명이론가로 계속 살아남지만, 바오는 죽은 뒤 대학교수가 된 판시춘으로 환생한다. 미얀마의 수도 핀카야잉의 초고층 건물에 살면서 명성을 쌓은 판시춘은 자신도 자식들의 문제에 고민하며 평범하게 늙어가는 처지임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새로운 수업에, '칼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여성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자신의 이론을 논박하는 것을 보며, 점차 수동적으로 변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판시춘은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며 새로운 수업을 진행해 간다.
지금까지 서술했듯이, B는 대체로 인간에 대해 우호적이며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K는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I는 상황에 대해 매우 분석적이고 과학적이며, 그 성격 탓에 K와 매우 잘 어울리지만 끝내 K가 안식을 바라는 대상은 B이다. 거듭되는 환생 속에서 B는 계속 냉소와 비관론으로 일관하는 K를 달래고 어르어 마침내 K가 (아마도) 자신의 뜻을 조금은 굽히게 만드는 데 성공한 듯 하다. 그것은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작가 자신이 가진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우호적인 전망을 비추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