عصبية (Asabiyyah). '아싸비야' 라고도 하나, 외래어 표기법에는 맞지 않는다. 아싸라비아 깐따비아 고마해 까치 번역판에서는 '연대의식'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1 개요
중세 이슬람의 역사가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의 역사 서설(Muqaddimah)이라는 책에서 언급되는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 해당 책에서 창조해낸 말은 아니고 원래 마그레브 유목부족들 사이에서 쓰이던 개념이라고 한다.
당대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가 겹치고 있었다. 한 국가가 쇠퇴하면 주변에 있던 유목부족들이 도시로 진입해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그러고서 또 쇠퇴하면 다른 유목부족들이 들어와 새 왕조를 세우는 일이 빈번했다. 이븐 할둔은 이러한 반복이 생겨나는 이유로, 전야민(田野民 - 움란 바다위, Umran badawi)들에게는 도회민(都會民 - 움란 하다리, Umlan Hadhari)에게 없는 '아사비야'라는 것이 있다고 여겼다. 즉 전야민들이 부족적 질서에 따라서 더 단합되어있기 때문에 아사비야를 더 많이 갖고 있어서 도회민들을 정복하게 되고, 그 전야민들은 도시에 들어온 다음부터 도시의 생활 형태에 의해 부족적 질서가 흐트러져 아사비야를 잃어버리고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보통 집단 구성원 사이의 단결을 뜻하는 말로, 오늘날에 쓰이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단어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다만 역사 서설에서 아사비야라는 단어는 오로지 마그레브 사회의 전야민들을 묘사하기 위해 쓰인 단어였기 때문에 바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인 집단 결속이라면 도시에 들어왔다고 해서 바로 흐트러지지 않겠지만 아사비야는 전야민들의 혈통적인 질서에 기반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시라는 보다 큰 대형 인구 집단에 진입하게 되면 흐트러지기가 쉽다.
역사 서설에서는 정주민이라고 볼 수 있을 움란 하다리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난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이브 라코스트는 본인의 저서 <이븐 할둔 : 역사의 탄생과 제 3세계의 과거>에서 말하기를, 움란 하다리가 상업적 기반을 갖고 있었음에도 결국에 부르주아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븐 할둔이 움란 하다리를 그렇게 비난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중세인인 이븐 할둔은 당연하게도 부르주아지라는 개념을 알 수 없었지만, 중세 이슬람의 쇠퇴기에서 벗어나려면 도시민들로부터 무언가가 발흥되어야 한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2 다른 매체에서
피터 터친의 <제국의 탄생>이라는 책에서는 이 아사비야라는 개념을 유럽 역사에 가져와 제국의 흥망을 논했다. 그는 제국이 한 번 세워지고 나면 마치 움란 바다위가 그랬듯이 아사비야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제국의 변경지 민족들의 아사비야가 올라가기 시작해 나중에는 변경에서 새로운 제국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문명: 비욘드 어스 라이징 타이드에서 새로 등장한 아랍 팩션 알 팔라는 문명 특성의 이름이 '아사비야'이다. 사실 이 항목을 만들 때 '아사비야'에 대해 검색해보면 그 팩션밖에 검색되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