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셜리(Anthony Sherley, ?~1637)
실존했던 해적들 중 한명.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많은 교육을 받았으나 파산으로 인해 몰락하자 1591년 노르망디 에식스 백작의 군대에 소속되어 프랑스의 기사 작위를 받았으나 이질적인 태도를 보인다하여 투옥되었다가 백작의 사촌과 결혼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자 잉글랜드로 돌아오고 1596년에는 백작의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 연안의 포르투갈령으로 탐험을 계획하였으며 5월에는 400명의 군인들과 8척의 수송선으로 탐험을 시작하였지만 항해한지 얼마 안돼서 병사들은 병에 걸려서 쓰러지고 북쪽으로 항로를 돌릴 것을 강요당했다.
베르데 곶의 산티아고에 정박하였다가 빈약한 전리품과 보급을 위해 콜롭비아의 산타 마르타를 약탈하기로 결정하였으며 1597년 초에는 산티아고 데 라 베가의 빈약한 식민지를 공격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자메이카에 머물던 도중에는 선장인 윌리엄 파커, 마이클 기어를 만나 그들과 함께 트루히요를 공략했으나 실패하였으며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공략하여 성공했지만 전리품이 빈약하여 기어와 함께 태평양으로 가기 위해 과테말라산을 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하들은 마젤란 해협으로 가길 원했고 그는 부하들에게 버림을 받게 되며 결국엔 막대한 부채만 안고 있는 배를 타고 잉글랜드로 돌아왔으며 1597년에는 영국 군대에 소속되어 이탈리아의 페라라로 보내졌다가 에식스 백작의 도움으로 페르시아에 가서 여기저기서 자금을 마련하여 1607년에 스페인으로 자리를 옮겨 1609년에 스페인이 바바리의 해적 코세어를 공격할 때 참가하였다.
스페인이 튀니스를 공략할 때 지원하였으며 또한 그리스 연안에서 유럽 선박들을 약탈하였으나 스페인이 튀니스 공략에 실패하자 모든 영향력을 잃고 가난한 삶을 보내다가 1637년에 스페인의 시르카에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