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얀 용블루트 (Jan Jongbloed) |
생년월일 | 1940년 11월 25일 |
국적 | 네덜란드 |
출신지 | 암스테르담 |
신장 | 179cm |
포지션 | 골키퍼 |
소속팀 | DWS(1959-1972) FC 암스테르담(1972-1977) 로다 JC(1977-1981) 고 어헤드 이글스(1982-1986) |
국가대표 | 24경기 0골 |
지도자 | HFC 하를럼(1981-1982)(수석코치) 비테세(1986-2000)(수석코치) 비테세(1999)(감독대행) 비테세(2000-2010)(유소년팀) |
1 소개
70년대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실력적으로 최고는 아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국제 대회에서 주전 골키퍼로 나섰다. 이유는 스위퍼-키퍼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클럽
DWS에서 데뷔했으며 팀은 1972년 FC 암스테르담으로 개칭했다. 1977년 로다로 이적해 1981년까지 뛰었고 1982년 부터는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활약했다. 1986년 만 45세의 나이로 은퇴했는데모 골키퍼가 생각난다 이유는 경기 도중 심장 마비가 왔기 때문이다. 이게 없었다면 더 뛰었을 것이라는 것(...)
에레디비지에서만 통산 707경기에 출장했는데, 이는 에레디비지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이다.
3 국가대표
1962년 대표팀에서 데뷔했다. 아약스의 하인츠 스투이, PSV의 얀 반 베베른과 같은 선수들에게 밀려 리그 최고의 골리 소리를 듣지는 못했으나 월드컵에서 이름을 날린건 오히려 얀 용블루트였다. 반 베베른의 경우 요한 크루이프와의 불화로 인해 퇴출당했고 스투이의 경우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적이 없다.
용블루트가 주전 자리로 올라선 것은 토탈 풋볼에 알맞는 골키퍼 롤인 스위퍼-키퍼 롤을 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74년 월드컵, 78년 월드컵에서 모두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고 모두 준우승을 경험했다.
4 지도자
고 어헤드 이글스에 입단하기 전까지 1981년 부터 1982년까지 HFC 하를럼의 수석코치로 있었다. 이때 지도했던 유명한 선수가 하나 있는데 바로 루드 굴리트.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뛰다가 현역 은퇴를 한 뒤 비테세와 인연을 맺었고 2010년까지 클럽 내부 직책을 수행했다.
5 트리비아
영상을 보면 간혹가다 골키퍼 장갑을 안끼고 경기를 한다. 대표적으로 74년 월드컵 결승전 서독전.
결혼과 이혼을 2번씩이나 했으며 슬하에 1남 1녀가 있었다. 아들인 에릭 용블루트도 골키퍼였는데, 1984년 얀 용블루트가 경기를 관전하는 가운데 벼락에 맞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