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憲
(? ~ 1370)
명나라의 개국공신. 자는 희무(希武)
태원성 양취현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유기를 위시한 절강(오늘날의 저장성) 출신의 귀족들에게 속하여 이선장과는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하였다.
1356년에 주원장이 금릉(난징)을 점령하면서 하욱, 손염 등과 함께 발탁되어 서기를 맡았으며, 장창이라는 자가 북원에 몰래 편지를 보내려는 것을 조사해서 알아내어 그를 주살당하게 만든다. 1368년에 중서성의 참지정사로 임명되었다. 10월에 중서좌승상 이선장이 율령총재관에 임명되고 어사중승 유기 등 19인과 함께 의율관에 임명되면서 12월까지 명나라의 법률인 대명률을 제정하는 작업에 참여하였다.
어사중승인 유기와는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주원장이 유기의 속을 떠보려고 호유용, 왕광양과 함께 승상으로 임명하려는 인물로 거론되었지만 승상으로서 재능은 있지만 기량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았다.
사람됨이 가혹하여 중서성을 맡자 어사 유병을 죽이고 중서우승상인 왕광양을 탄핵하였으며,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이선장과 대립하는 것을 이용하기 위해 주원장의 총애를 받았다. 1370년에 주원장에게 상인들이 북방에 운송한 군량, 군수물자를 운반하면 그 양만큼 소금으로 바꿔주는 개중제를 건의하였으며 7월에 주원장에게 주살된다.
2006년에 방영한 중국 드라마인 주원장에서 이선장과 대립하면서 주원장에게 총애를 받으며 이용당하는 역할로 유기의 제자로 나오며, 양주로 부임해서 5년 안에 양주를 부흥시키겠다는 명을 완수하여 그 공으로 중서좌승상이 되면서 그 권력을 휘두르자 유기가 그를 멀리하게 된다.
주원장의 명으로 과거 시험장의 돌판이 부서진 곳이 있자 그 감독관을 붙잡아 처형하는 등 법을 어기는 여러 사람들을 붙잡아 주저없이 죽이는 잔인한 면모를 보였다.
또한 호유용, 왕광양과 대립하지만 결국에는 양주에서 장부를 조작하고 상인에게 물자를 전부 사서 그를 죽이고 은폐하여 부흥한 것처럼 꾸미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루어 일을 시킨 사실을 그를 조사하던 호유용에게 발각되며 이 사실을 보고받고 주원장에게 알려져 처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