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와 소름마법사

차모니아의 작가 고피트 레터케를의 요리 동화를 전설적인 공룡 작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리메이크하여 발터 뫼르스가 독일어로 번역한 소설.

차모니아에는 도시 주민이 모두 병에 걸려 골골거리는 슬레트바야라는 도시가 있다. 주인공 에코는 그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난 양이다(양이가 아님). 코양이는 고양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간이 두 개 있고 말할 줄 안다.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풍족하게 살던 에코는 자신을 돌봐주던 주인 할머니가 죽자 졸지에 쫄쫄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굶주림 끝에 길거리에서 사경을 헤매던 무렵, 에코의 앞에 슬레트바야의 지배자인 소름마법사 아이스핀이 나타난다. 아이스핀은 제안한다. '어차피 죽을 목숨, 죽기 직전까지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여주겠다. 대신 살찐 네 시체에서 기름을 뽑게 해줄 수 있겠나? 강제로 뽑는다면 코양이 기름의 마법적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네 동의가 필요하다.' 아사 직전이었던 에코는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스핀의 제안을 수락하고 따라간다. 아이스핀은 요리를 대접하고, 막상 배를 채우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에코는 살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시한부 인생이 된 에코가 아이스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본 작의 메인 줄거리.

초반부에서 음식을 먹고 리액션하는 에코의 모습은 완전히 요리소설 수준이다. 뫼르스다운 번뜩이는 상상력이 놀라운 작품.

글을 읽는 독자의 예상을 뒤엎고, 소설의 주제는 사랑이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광기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며 심각한 감정간의 착란현상을 야기할 만한 표현이 다수 존재한다.

번역자는 이광일. 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을 번역한 역자인데 고유명사를 좀 발번역해놨다. 전작에서 a라고 번역한 걸 이번 작에서는 b라고 번역한다든지, 한 페이지에서 A라고 표현해놓은 걸 조금 있다가 B라고 지칭한다든지.[1] 오타도 장난 아니게 많다. 설렁설렁 읽어도 눈에 밟힐 정도. 작가의 다른 책들에서 이미 번역되었던 것들에 대한 주석을 달기 힘든 책이다보니[2] 고유명사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다른 역자들과 표현하는 말이 다 달라서 혼란한 점도 있는 듯 하다.

이 소설의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발터 뫼르스가 차모니아 4부작과 관계없는 다른 차모니아 문학 중 하나를 번역했다기 보다는 이미 자신의 다른 소설들에 나왔던 내용들과 설정들에 의존해서 새 작품을 써냈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 유입되는 독자들에겐 혼란을 야기하며 책 구입을 거의 반 강제적으로 부추긴다는 점에서 상당히 거슬린다.

  1. 시트와 셔츠... 잘 읽어본 사람들은 안다.
  2. 삽화나 연출 등을 고려하면 따로 주석을 달 공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