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오카 덴시치로


吉岡伝七郎

생몰년도 미상

전국시대의 검호로 그 당시 유명했던 유파인 요시오카류 3대 당주인 요시오카 세이쥬로의 동생이자 요시오카 나오타카의 아들로 요시오카전에서 보이는 요시오카 시게카타 나오시게(吉岡又市直重)와 동일 인물로 보인다.

1604년에 미야모토 무사시가 형인 세이쥬로와 시합한 이후에 무사시와 시합했다고 하며, 이천기에 따르면 교토 바깥에 나가서 승부를 냈다고 하며, 5척 정도의 큰 칼을 가지고 무사시와 상대했지만 그 칼을 빼앗기면서 역으로 일격에 베여 절명했다고 한다.

요시오카전에서는 무사시가 세이쥬로와의 시합이 끝난 후에 무사시와의 시합을 약속했지만 무사시가 시합 당일에 나오지 않아 부전승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기록들은 무사시 측과 요시오카 측이 자신의 입장에 따라 서술하여 서로 자기 쪽이 이겼다는 기록으로 엇갈리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승부의 결과는 알 수 없다.

배가본드의 요시오카 덴시치로

경팔류 요시오카 도장의 일원으로서 선대인 요시오카 겐보[1]의 차남이자, 당주인 요시오카 세이쥬로의 동생이다. 형제인데도 외모가 극과 극으로 다르다.(...) 한량인 형과는 달리 우직하고 정이 많은 성격. 덕분에 항간에 평이 좋지 못한 형과는 달리 도장 사람들에게도 많은 신임을 받고 있다. 우에다 료헤이는 대놓고 당주는 세이쥬로가 아니라 너다! 라고 할 정도. 무사시와 작 초반에 대결해서 치명상을 입히지만, 화재로 인해 승부를 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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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무사시와 재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재대결에 앞서 믿고 따르던 형 세이쥬로가 무사시와 대결끝에 죽임을 당하게 되어 매우 심란한 상태로 대결에 임하게 된다. 결국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사망. 세이쥬로와는 달리 무사시에게 부상하나 제대로 못 입히고 패하게 된다.

그래도 자신이 죽을 걸 예측하고 유언장으로 복수같은 거 집어치우고 우에다 료헤이에게 차기 당주를 맡기며 요시오카 도장을 발전시키라는 부탁을 했으나 료헤이와 10검과 제자들은 이를 지키지 않고 이들 70여명이 무사시랑 대결을 벌이게 된다.

야규의 극의를 꿰뚫어 보지 못한 점이나, "독수리가 보기에 머물러있는 개미들도, 한걸음 한걸음 느리게 나아감에도 성취감을 느낀다"라는 말에서도 보이지만 재능충이 아닌 노력충의 한계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자의 고뇌, 절망을 보여주는 인물. 그릇 자체가 검의 극의를 담을수 있는 그릇이라기 보단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보는것이 정확할것이다.
  1. 여기서는 편의상 겐보로 나온 것 같지만 요시오카 나오타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겐보는 요시오카의 당주 대대로 내려지는 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