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劉矩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숙방(叔方). 유숙료(劉叔遼), 유광[1]의 조카

패국 소현 사람으로 주, 군 등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숙부 유숙료가 벼슬을 하지 못했으므로 거절했으며, 태위 주총, 태부 환언 등이 유구의 뜻을 알고 유숙료를 삼공부에 벽소하고 유구는 효렴이 되었다.

161년 여름 4월에 옹구의 현령이 되어 현의 관리들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면서 떨어뜨린 물건의 주인을 찾아줬으며, 예절과 겸양으로 백성들을 교화했다. 송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그를 앞으로 데리고 와서는 귀를 잡아 훈계하면서 화를 참을 만하면 관아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송사하는 사람이 감동해 번번이 각자 그만두고 갔으며, 4년 동안 맡다가 어머니가 죽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후에 태위 호광이 유구를 현량방정으로 올렸으며, 4차례 옮겨져 상서령이 되었고 귀족들에게 아첨하지 않았다.

대장군 양기의 심기를 건드려 상산상으로 좌천되었다가 병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양기의 처남 손지가 패상으로 부임하자 유구는 살해당할까봐 두려워해 팽성에 있는 친구인 환옥도의 집에 숨었다. 1년 후에는 양기에게 용서를 받았고 종사중랑, 상서령, 종정, 태상 등을 했으며, 161년에 태위가 되었고 사공 황경, 사도 충고 등과 함께 조정을 보좌해 현명한 재상이라 했다.

태중대부가 되었다가 168년 5월에 태위가 되었으며, 이름난 유학자들을 모았고 주, 군의 장관과 교류하지 않았다. 11월에 일식으로 면직되었다가 은퇴하고 집에서 죽었다.
  1. 劉光, 유거의 삼촌으로 순제 때 사도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