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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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7일생. 2003년 4월 26일 사망.

개요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 시민운동가, 시조 시인, 작가, 평론가, 아마추어 연극배우, 성악가.

2003년 4월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요구하며 목을 매 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으로 2004년 2월 대한민국의 청소년 보호법에서 동성애를 유해단어에서 삭제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어, 2004년 4월 20일 대한민국 국무회의에서 동성애는 청소년 보호법의 유해 단어와 인터넷 금지 단어에서 삭제되고, 4월 29일 동성애는 음란물 지정에서 삭제되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시발점이 되었다. 본명은 윤현석이고, 육우당(六友堂)은 그의 아호이자 가명이고, 필명은 설헌(雪軒), 미동(美童), 동화(童花), 항아(姮娥), Catholic84 등이며, 천주교 교명은 안토니오이다. 인천광역시 출신이다.

중학교 재학 중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자각, 중,고등학교 내내 학생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다 2002년 12월 고교를 자퇴하였다. 그는 시조시인이 되기를 원했고, 동성애자에 대한 대한민국의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였다. 학생 시절부터 시와 작문을 시작, 2002년 1월에는 정식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2000년부터는 동성애 커뮤니티 및 동성애자 단체를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에 맞서 동성애 혐오를 비판, 동성애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객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2001년 홍석천, 하리수 등의 고백 이후 홍석천, 하리수 등을 격려하며, 이들을 지지하는 카페들을 개설, 운영하였다. 2001년에는 서울의 모 극단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성악과 연극을 지도받았으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탈퇴하고, 2002년 5월경 경기도 부천시의 다른 극단으로 들어가 연습하였다.

2002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동성애자인권연대(약칭 동인련)에 가입하여 학생 운동가로 활동을 시작, 2003년 청소년 보호법 제정 시 서울에서 동성애 혐오단어, 금지단어 지정 반대 운동, 동성애자 차별 철폐 운동, 소수자 차별 철폐 운동 등을 벌였다. 2003년 3월부터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상근 직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반전 평화운동,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에 동참했다. 그해 4월 5일과 4월 7일 동성애자에 대해 소돔과 고모라 라는 비판과 인신 공격이 계속되자 이를 비판했고, 4월 26일 그는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다'며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서 “내가 믿는 하느님은 나를 받아줄 것이다” 는 구절을 남겼다. 당시 그는 6장의 유서와, 34만원의 현금 그리고 묵주를 유품으로 남겼다. 작품 활동으로는 시조와 평시, 가사 등을 창작했고 시조동호회와 문인단체의 회원이었으며 직접 청소년 시조, 시인 모임인 화랑을 조직하고 카페 매니저로도 활동했다. 사후 2006년 4월 유작 <내 혼은 꽃비 되어>가 출간되었다.

사망 직후 동성애자도 사람이라는 주장과 반대 견해가 팽팽히 대립하였다. 4월 29일 동성애가 음란물에서 지정 해제되고, 사후 1년 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은 삭제되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활동하고 싶다 하였으나 사후 한동안 그의 이름은 공개되지 못했다. 2010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금기시가 풀리면서 그의 본명과 활동이 시중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