應據
(? ~ 252)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 자는 휴련(休璉). 응창의 동생, 응정의 아버지.
여남 사람으로 넓게 배우고 글을 잘 쓰면서 서기에 능했으며, 조비, 조예 때 산기상시를 역임했다. 조방이 즉위하자 점차 시중, 대장군 장사로 옮겼으며, 조상이 정권을 잡고 사치, 낭비에 빠지면서 파당을 조직해 측근들을 중용하고 500여 명의 빈객을 거리는 등 법도를 어기자 시로써 이를 풍자하면서 간했다.
그 말은 비록 생각보다 매우 화합했지만 시요에 많이 적중해 세상에서 칭해졌으며, 다시 시중이 되어 저작을 권장했다. 252년에 죽자 위위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여유공재서가 있고 그 당시 유명했던 광릉산이라는 작품에 대해 광릉의 청산함을 듣는다고 평가했으며, 오늘날에는 밭을 가는 세 노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시 한 수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