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ic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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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스토리
서방에는 '아비센나'로 알려진 아부 알리 알 후사인 이븐 시나(979-1037)는 "의학의 왕자"라고 불리던 위대한 철학자이자 의사였다. 이븐 시나가 저술한 "의학정전(al-Qanun al-Tibb)"은 중동과 유럽에 걸쳐 사세기가 넘도록 교과서로 쓰일 정도였다. 그의 명성 덕에 이븐 시나는 영광과 부를 누릴수 있었고, 인생에 있어 육신의 쾌락을 즐기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알레프의 하킴 프로젝트는 그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단순히 과학 실험 목적으로 누군가를 재창조한다는 건 이에 들어가는 수고를 생각하면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뒷소문이나 음모론 포럼에서는 어떤 소문이 은밀히 퍼져 있다. 하킴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은 알레프가 하퀴슬람에 비밀공작을 펼치기 위한 교두보이며, 이를 통해 하퀴슬람의 수뇌부를 손에 넣을 셈이라는 소문이다. 알레프의 목적은 바로 이븐 시나를 '외교관'으로 삼아 하퀴슬람에게 접근하여 유징이나 판오세아니아가 그랬듯 하퀴슬람 역시 알레프의 존재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던 아니던, 하퀴슬람의 독자성에 위험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하사신 교단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하사신 교단은 블랙 핸드와의 협력을 통해 이븐 시나가 테러리스트의 습격으로 죽은 것으로 꾸며 그를 납치하는데 성공했다. 하사신은 즉각 그의 육신과 알레프의 연결을 끊어버렸고, 연구 분석을 위해 프락시스의 비밀 연구소 중 하나로 이븐 시나를 호송했다. 이들은 이븐 시나에게서 알레프와 연결된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 생체웨어와 나노웨어를 비롯한 모든 걸 싹 뽑아낸 뒤 새로이 극비 부품들을 박아넣었다. 이것들은 아르 테크노 디바리우스의 헬로 박스에서 가져온 물건이었다.
하지만 작전의 두번째 단계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알레프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조사를 끝마친 이븐 시나는 인류계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한 블랙 핸드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으로 보내졌다. 블랙핸드는 이븐시나에게 새로이 완벽한 신원칩을 이식 한 뒤 고의적으로 부분적 기억상실증을 일으켜 이븐시나의 정체성에서 가장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지우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블랙핸드는 그의 인격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신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약간의 수정을 거쳤다. 이븐 시나의 새 육신은 바로 하사신 교단이 제공한 최신예 여성형 의체였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이븐 시나의 자아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된 건 아니었다. 그녀는 하사신과 노매드 과학자들의 긴밀한 감시와 조사과정 아래 몇년 동안 메디나의 비마리스탄 대학의 젊은 박사과정 학생으로 살아가며 신원을 유지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막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기억상실증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해 이븐 시나의 실제 성격이 여러가지 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블랙 핸드가 제작한 가짜 인격은 점차 알레프가 재창조 했던 본래 인격의 잔재에 흡수되고 뒤섞이기 시작했다. 최종 단계에 들어서는 이븐 시나의 인격이 너무나 위태로워졌고,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사 과정이 끝난 뒤 이븐 시나는 하사신과 노매드의 감시에서 자유로워져 그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얻었다. 이는 하사신과 노매드가 알레프에게 보내는 작은 복수였다. 수많은 경험에 대한 열망으로 이븐 시나는 보락을 떠나 인류계 전역을 방랑하며 그녀의 원래 성격이 바라마지 않았을 만한 장소를 찾아갔다. 자유와 지식에 대한 욕망에 이끌린 이븐 시나는 수많은 가짜 신원과 함께 인류계를 주유했다. 충분한 돈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할데 없는 의료 기술을 제공하면서 말이다. 이븐 시나는 모험에 대한 강렬한 욕구로 여러 용병 기업의 군의관에 등록했고, 알레프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신의 신원을 교체했다.
이븐 시나는 재창조의 배경이 된 인물과 마찬가지로 지칠줄 모르는 여행자인 동시에 안락과 사치, 그리고 일상적인 기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이븐 시나는 종종 끝없는 방랑을 멈추고 주치의나 선의로 일하곤 한다. 그 쉴새 없는 여행과 사치, 방종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이븐 시나는 최근 니마탄 섬의 개척민들을 침잠해 들어가던 유전자 조작된 열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해 내며 임상의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이븐 시나가 제약 합병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너무 많은 시선을 끌여들었고, 이븐 시나는 어쩔 수 없이 용병 기업의 어두침침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최근 들어 이븐 시나가 어떤 가명을 대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아예 이븐 시나가 실존 인물인지 알아내는 것조차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를 뒷받침해줄 공식 문건은 남아있지 않고, 오로지 도시 전설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알레프를 둘러싼 다른 수많은 음모론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