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 前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 |
1988 캘거리,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
1990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1] | |
이름 | 이준호(李準鎬) |
생년월일 | 1965년 9월 7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학력 | 단국대학교 대학원 |
신장 | 171cm |
체중 | 65kg |
주종목 | 1000m, 1500m |
동계 올림픽 3000m 금메달 | |||||||||||
이준호 (1988 캘거리)[2] | |||||||||||
동계 올림픽 5000m 계주 금메달 | |||||||||||
네덜란드 (1988 캘거리)[3] | → | 대한민국 (1992 알베르빌)[4] | → | 이탈리아 (1994 릴리함메르) |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자 | |||||||||||
미셸 디뉴 (1989) | → | 이준호 (1997) | → | 윌프레드 오라일리 (1998) |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레전드 김기훈과 함께 같은 시대에 선수생활을 했던 1세대 쇼트트랙 선수이며, 김기훈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기량과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레전드급 활약을 펼쳤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원래는 스피드 스케이팅 단거리 종목 선수였는데 그 덕분인지 폭발적인 스피드와 파워를 갖추고 있었고, 순간 스피드와 지구력도 겸비한 선수였으나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와 파워보다도 더 중요한 기술과 경기운영능력 면에서는 김기훈에 비해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1000m 동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을 딴 자신의 2년 후배 김기훈에게 가려졌고, 5000m 계주에서도 김기훈이 막판 뒤집기를 해내면서 2인자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이 때부터 이미 전명규의 에이스(김기훈) 밀어주기가 있었는데 이준호도 그 희생양 중 하나였으며[5] 결국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2002년 김기훈(전명규-한체대파)가 남자 대표팀을, 이준호(비한체대파)가 여자 대표팀을 맡으면서 파벌 싸움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다.
하지만 코치로서는 행보가 좋지 못한데 2002년에 맡았던 여자 대표팀 감독직을 1년도 안되서 내려놓게 되었고[6] 2011년에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벌금형을 물었으며 2014년엔 화성시청 코치를 하던중에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소를 당한 일까지 있었다.
유일하게 평가가 좋은 쪽은 해설가로 활동하던 시기. 토리노 올림픽 당시 SBS의 전이경이나 MBC의 김동성보다도 훨씬 더 정돈되고 조리있는 해설로 호평을 받았고 안상미가 현재 SBS에서 해설가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와중에도 알부 팬들 사이에서는 가끔씩 이준호의 해설이 거론될 정도. 물론 비판도 있는데 너무 화법이 직설적이라든지 혹은 비한체대 선수들쪽으로 조금 편파적인 해설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7][8]
그러나 하도 사건이 많았던 지라 다시 해설가로 복귀할 수 있을지는 (그리고 본인이 다시 할 의사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1.1 수상경력
1.1.1 동계올림픽
금 1988 캘거리[9] 3000m
금 1992 알베르빌 5000m 계주
동 1992 알베르빌 1000m
1.1.2 세계선수권
금 1990 암스테르담 종합우승
동 1991 시드니 종합 3위
동 1992 덴버 종합 3위
1.1.3 세계 팀 선수권
금 1994 캠브릿지
은 1991 서울
은 1995 주테미어
1.1.4 동계 유니버시아드
금 1989 소피아 500m
금 1993 자코파네 1000m
금 1993 자코파네 1500m
금 1993 자코파네 3000m
은 1989 소피아 1000m
은 1989 소피아 3000m
동 1993 자코파네 500m
1.1.5 동계 아시안게임
은 1990 삿포로 1500m
은 1990 삿포로 3000m- ↑ 대한민국 선수로는 첫 세계선수권 우승 경험자다.
- ↑ 1988 동계 올림픽때 시범적으로만 보여지고 그 이후로는 현재까지 정식종목에서 배제되었다. 즉 시범종목이었기는 했지만 이준호가 역대 유일한 올림픽 3000미터 우승자다.
- ↑ 시범종목
- ↑ 정식 초대 올림픽 계주 우승국
- ↑ 이 때문인지 선수 시절 둘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실력이 더 뛰어난 김기훈을 시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 후임은 김소희와 최광복
- ↑ 한창 파벌 싸움으로 시끄러울 때 안현수를 깐적도 있다. 하지만 안현수가 불참한 2010년 벤쿠버 올림픽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안현수같은 해결사가 없었서 아쉬웠다" 라는 발언을 했고,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는 그의 활약을 극찬함과 동시에 한 인터뷰에서는 한국은 국보급 선수를 잃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 ↑ 다만 안현수에 대한 이준호의 입장이 변한 시점은 전명규가 안현수의 가장 든든한 우군에서 가장 큰 적으로 돌변한 이후임을 간과할 수 없다. 대표적인 비한체대파이자 반전명규 인사인 이준호 입장에서는 소치 올림픽 때 맹활약한 빅토르 안을 치켜세울 수록 전명규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
- ↑ 당시 쇼트트랙은 시범종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