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테루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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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田輝政
1565년 1월 31일 ~ 1613년 3월 16일

1 전국시대 인물

이케다 츠네오키의 차남. 오다 노부나가의 근신으로 많은 무공을 세웠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히데요시를 섬겼다. 아버지와 형이 고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 전사하자 가문을 상속했다. 후에 도쿠히메와 결혼할 때 아버지를 죽인 도쿠가와측 장수를 만났는데 그의 봉록이 적은 것을 알고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고작 이 정도 봉록을 받고 있다니'하고 한탄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친누이가 도요토미 히데츠구의 정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데츠구 사건 당시 연루되기는커녕 오히려 히데츠구의 정실이 그의 누이라는 이유로 살아난 것을 보면 히데요시의 신뢰도 두터웠던 듯.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에 가담하여 서전에서는 기후성을 공략하고, 결전에서는 동군 선봉을 맡아 분전하였다. 전후 그 공으로 하리마국 히메지에 영지 53만석을 받아 '히메지 재상'으로 불리었으며, 히메지 성도 바로 이 사람 작품이다.

아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 도쿠히메.[1] 그녀도 도쿠가와 가의 여성답게 기가 세 일설로는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배다른 자식을 독살하려 했다고 한다. 장가 잘 든 덕에 출세한 인물로 폄하되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도 한 가닥하는 능력자. 애초에 무능한 인물이었으면 이에야스가 딸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케다 테루마사의 이케다 가문은 손자대에 히메지번에서 다른 번(藩)으로 전봉 된다. 히메지번 시절의 52만석에서 줄어들긴 했지만 다른 다이묘들과 비교해도 고쿠다카가 많은 측에 속하는 오카야마번((31만 5200석 - 종가), 돗토리번(32만석 - 분가) 2개의 번(藩)을 받게 된다.

추가로 본래 이케다 테루마사가 받았던 히메지번은 막부의 의향에 의한 것인지 여러 가문<이케다 - 혼다 - 마쓰다이라(오쿠다이라) - 마쓰다이라(에치젠) - 사카키바라(마쓰다이라) - 마쓰다이라(에치젠) - 혼다 - 사카키바라 - 마쓰다이라(에치젠) - 사카이>이 번주(藩主)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카이 가문이 최종적으로 정착을 하게 된다. 다만 사카이 가문이 최종적으로 정착을 하게 된 히메지 번은 고쿠다카(石高)가 크게 줄어, 이케다 테루마사 시절의 52만석에서 37만석이나 줄어든 15만석이 된다.

1.1 창작물

1.1.1 바사라2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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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어이. 나리를 해칠 이유는 없잖아?

담뱃대가 트레이드마크.
츠네오키가 타는 전투기(그림 상으로는 아무리 봐도 전투기로는 안 보이지만)의 강화판을 타고 등장한다.

1.1.2 지휘봉의 행방의 등장 인물

비주얼 신장 180cm, 비주얼 연령 32세, 취미는 좌선.

도요토미 정권에서 중용되었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이기 때문에 동군에 들었다. 무표정하고 말이 없으며 명령에 충실하다. 묘하게 '사명'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는 옛날 아버지가 도발에 넘어가 명령을 어기고 함부로 돌출했다가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 자신도 아들(테루마사의 형)과 함께 전사한 경험 때문.

생긴 건 아무리 봐도 로봇. 여담으로 초기 설정화에서는 투구를 벗은 얼굴이 호소카와 타다오키와 똑같다.
  1. 본래 호죠 우지나오와 결혼했으나 우지나오 사망후 테루마사와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