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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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건축은 압축된 음악이며 빛과 그늘의 조화.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이타미 준(伊丹潤, 1937년 ~ 2011년 6월 26일)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로, 한국 이름은 유동룡(庾東龍)[1]이다. 의외로 재일동포인 그의 일본 이름 '이타미 준'은 필명이었다. 평생 유동룡은 귀화를 거부하고 일정기간마다 외국인 등록을 위해 열 손가락의 지문을 날인하고 그의 성씨인 유[庾]는 일본에선 쓰이지 않는 한자라 본명을 사용할 수 없었다. 위에 나와있듯이 유[庾]씨는 국내에도 거의 존재하지 않은 성씨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는 오사카의 이타미(伊丹) 공항의 이름과 깊은 교분이 있던 작곡가 길옥윤 [吉屋潤]의 마지막 글자 윤[潤, 일본어 발음 준]에서 따온 것이다. 즉, 한국에서는 이타미 준으로 일본에서는 유동룡으로 불리는 경계인으로의 삶이 그의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유동룡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사시 공업대학(현 도쿄도시대학) 건축학과를 다니며 혼자서 한국 여행을 하며 한국의 고건축, 조선 민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연구로 이조 민화(1975), 이조의 건축(1981년) 조선의 건축과 문화(1983년), 한국의 공간(1985년) 등의 책을 발간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일본에 몸을 두면서 한국을 그리워 하며 살았던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딸이름도 한국의 이화여대에 들어가 조신하게 자라 한국 신랑을 만나라는 뜻으로 유이화라고 지었다. 소원대로 그의 딸은 초등학교 때 한국을 건너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한국남자와 결혼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ITM 유이화 건축사무소를 냈다.

그는 2003년 세계적인 동양박물관인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의 개인전 제목 역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 으로 기메박물관은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작가, 국적을 초월하여 국제적인 건축 세계를 지닌 건축가'라고 극찬을 보냈다.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타미 준이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에 갇히지 않고 세계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 개인전을 계기로 일본건축가협회 정회원, 2005년 프랑스 예술훈장 슈발리에와 레지옹도뇌르 훈장, 2006년 한국의 김수근 건축상, 200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0년 일본 최고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그를 단순한 건축가로 규정하는 것은 부족할 것 같다. 일본에서 자란 그가 사랑했던 한국의 혼으로 세례를 받았고 세계인으로 나아간 그에게 말년의 제주는 제2의 고향이라 할 만큼 대표작들을 쏟아냈다. 바람, 물, 돌 미술관은 건축이면서 예술작품으로 제주의 빛과 바람에 시시각각 변하는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일"이라는 그의 말을 그대로 표현했다.

제주 비오토피아의 핀크스골프클럽과 포도호텔, 바람.돌.물 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를 돌아보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제주의 지역적 특성을 담아내며 건축으로 예술에 다가가고자 한 유동룡을 느낄 수 있다.
  1. 한글로만 보면 흔한 성씨라고 하지만 한자로 본다면 희성이다. 본관은 무송 유씨로 전국에 10,000여명 밖에 안되는 희귀 성씨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