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漢籌
생몰년도 미상
영조 때 부장으로 있다가 말을 전하는 것이 지체되었다는 죄로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정조 원년인 1776년 8월 7일에 석방되었다가 정조 7년인 1783년 11월 12일에 도총부경력으로 있었을 때 여러 신하들과 함께 꾸미지 않은 백면지를 하사받았으며, 12월 28일에는 함양부사에 임명되고 괴이하게 여길 일이 없이 성실하게 일했다고 한다.
정조 9년인 1785년 3월 3일에는 인동부사에 임명되었으며, 백성들에게 이로우나 일을 치우치게 했다고 하며, 정조 11년인 1787년 4월 29일에는 흉년이 들어서 조세를 감해줄 때 인지를 나눠주고 환곡을 받을 때 색락[1]에 맞게 하면서 실질적으로 백성들에게 혜택이 가면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하며, 8차에 걸쳐서 백성들을 구제했다고 한다.
창작물에서
야뇌 백동수에서 훈련도감의 부교련관이자 임수옹의 수제자이자 백동수의 선배로 등장.
사도세자를 탈출시키기 위해서 거짓으로 계획을 밝히는 척 하고 무표정을 유인하지만 구선복은 그것마저 꿰뚫어보고 있었고 무표정에게 동귀어진을 실행하나 실패하고 죽어버린다.- ↑ 세곡이나 환곡을 받을 때 조세를 거두면 세곡의 수량을 검사하는 급창과 이를 보관하던 고지기의 보수로 받는 부가세인 간색(看色)이나 쌀의 양에 따라 축나는 것을 채우기 위해 가외로 더 받는 곡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