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에서 나타난 미술 작품에 관한 문서이다.
2 선사시대
3 나라시대
4 헤이안 시대
5 가마쿠라 막부
6 무로마치 막부
7 모모야마 시대
7.1 회화
장벽화의 황금시대[1]
모모야마 시대에 들어서 일본 미술은 여타 다른 동아시아 국가, 특히 명대의 미술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경향들이 화단에 유입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화단의 경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장벽화, 장병화의 경향으로 이후 일본의 장식 미술에서 대를 이어 명성을 이어가는 가노파와 림파로 대표된다. 또 다른 하나는 양화 및 남만화의 경향으로 당대의 중국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들 그리고 일본에 찾아온 유럽인 상인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형성된 경향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풍속화가 그려지게 되는데 풍속화는 이미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그려진 바 있으므로 새로운 경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 가지 경향 중 모모야마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한 가지 회화상을 꼽으라면 장벽화, 장병화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어용화사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화려한 벽화들을 그려내었으며 이들로부터 시작된 화단의 양식은 이후 에도 시대에도 존속된다. 이 시기 대표적인 화가는 노부나가의 휘하에 있었던 가노 에이토쿠였다. 그는 노부나가의 밑에서 각종 예술 사업을 도맡아 처리하였고 그와 그의 제자들이 남긴 작품들이 오늘날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물론 그는 노부나가 이외에도 우에스기 겐신의 주문을 받아서 일하기도 하였으며 이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문을 받아 오사카 성과 쥬라쿠 궁의 장식을 도맡게 된다. 에이토쿠로부터 시작된 어용화사 집단이 이후 귀족층, 막부, 종교계 등의 주문을 받게 되면서 하나의 화파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에도 시대 장식화의 경향을 대표하는 가노파다. 형식적으로 보았을 때 가노파는 장식화적인 경향으로 말미암아 화려한 색채를 보여주었고 구도에 있어서 단일 대상을 크게 확대에 화폭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방식을 즐겨 썼다. 이것은 이 화파의 성장에 결정적 공헌을 한 가노 에이토쿠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는 <당사자도병풍>은 그러한 경향을 일례를 보여주며 가노파의 일원 중 모모야마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가노 산라쿠의 <송응도>에도 유사한 구도가 보인다.
장식화의 경향과 별개로 서양의 양식에 영향을 받아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화풍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또한 내항하는 유럽인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유럽인의 모습, 정확히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인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등장하는데 남만화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에 등장한 새로운 화풍에 영향을 끼친 것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들이었다. 특히 1579년 알레란드로 발리냐노가 일본에서 가톨릭 신부 육성을 위한 교육 제도를 수립했을 때 몇몇 일본인들이 서양화법을 배워 그림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일본인의 서양화풍 그림 중에서는 16세기 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서왕후기마도>나 <성자비에르상>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서양화풍의 그림을 그렸던 사람 이외에도 주제적인 측면에 있서 서양인을 주제로 활용하는 경향도 등장했는데 이런 그림들은 당대의 무사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장르 중 하나였다. 기법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일본 전통화풍을 따르고 있으나 그려진 대상들은 서양인인 경우가 많으며 병풍에 그려진 그림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물론 이러한 남만화의 경향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풍속화의 경향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가노파의 일원으로 장식화를 그리던 화가들도 풍속화의 일종으로 서양인들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들이 그린 서양의 모습은 사실 당대의 시대상을 비추어 볼 때 풍속을 그린 그림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남만화의 영향력이 풍속화의 경향과는 별개로 모모야마 시대에 강세를 드러냈기 때문에 미술사에서는 남만화의 경향을 따로 분리하여 살펴보는 편이다.
8 에도 막부
9 근현대
- ↑ 일본의 미술사학자 아키야마 테루카츠가 이 시기의 미술을 정의하며 명명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