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배우로 본명은 임관배이다. 숭실고 시절에는 육상선수로 활동했고, 건국대학교 체육학과를 다녔으나 중퇴한 후 1977년 TBC의 18기 배우로 데뷔하였다.
1980~1990년대 미남 배우로 잘 알려져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배우로 알려졌으며, 생전에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평가를 받아 왔다. 반도패션의 전속 모델로도 활동했다.
1980년대 중후반 에로영화 요즘 수위로는 애들영화 의 간판급 배우로 주로 바람둥이 아님 남창(지골로)역할을 주로 맡았다. "달빛 멜로디"에 이은 두번째 에로영화인 "탄드라의 불"에선 여주와의 베드신때 부끄럼타서 자신의 주요부위(?)를 두손으로 가렸다는 순진하고 풋풋한 에피소드가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영화로는 "색깔있는 남자"와 "무릎과 무릎사이" 이후 에로영화는 1989년 "애란"을 끝으로 이후엔 노출도가 없는 영화만 찍었다. 지금은 키 크고 잘생긴 배우들이 하도 많은데다 성형한 배우들도 적지 않아서 외모에 따른 변별력이 많이 없어졌으나, 당시엔 얼굴 잘생기고 키까지 큰데다 연기도 곧잘하는 배우는 드물던 시대라 워낙에 월등한 비주얼로 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벗어서 유명해진(?) 배우라는 프레임만 씌우는 것도 부당한게, 1986년 "장사의 꿈"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자신인연기상, 1991년 "사의찬미"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드라마에서도 한동안은 좋은 역할보다 야비한 악인 역할을 맡아서 "푸른 해바라기"에선 절친의 여친을 탐하는 역할, "황금의 탑"에선 크게 도약해서 절친을 죽이고 약혼녀를 빼앗는 무자비한 역할을 맡아서 [1] 한동안 비호감 인상이었으나 급호감으로 대반전을 이룬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니 바로 당대 최고의 유행어 "잘났어 정말"을 탄생시킨 고두심 주연의 "사랑의 굴레"에서 젠틀하고 유능한데다 발군의 비주얼 "고실장" 역할을 맡아서 극중 의부증 쩌는 고두심의 노골적인 추파는 물론 전국 아줌마들의 지지도 No.1으로 급상승 하며 이후 서브남주에서 메인남주로 격상되었다.[2]
그러나 1990년에 만성 간염을 앓게 되었고, 1993년에는 MBC 드라마 "폭풍의 계절" 출연 도중에 간질환으로 쓰러져 투병하기도 했다. 결국 1995년 5월 드라마 출연도중 갑자기 쓰러져 투병하다가 간경화로 결국 8월 20일 저녁 강남성모병원에서 향년 39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그런데 그는 1995년 당시 SBS 드라마 "고백", MBC 드라마 "사랑과 결혼"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었고, 김호선 감독과 김청 등과 함께 멕시코 올 로케로 찍고 있었던 영화 "애니깽"[3]도 촬영 중이었다..... 당시 간 이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하였지만, 간 이식을 받지 못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건강 악화로 하차하면서 "사랑과 결혼"은 손창민이 그의 대타로 출연하였다.
월간 영화잡지이던 스크린의 1986년 3월호 기사 중 "2000년대에 대한 미래는?" 이라는 기사의 인터뷰에서 "...난 중후하게 늙고 싶으며....외모보단 연기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미래에 독자들이 컴퓨터 버튼 하나로 영화를 볼 시대가 올 지 모르지만, 넓은 화면에서 영화를 보는 게 매력이다." 라는 말을 했다. 물론 그로부터 10년도 못 가서 세상을 떠나게 될 줄은... 그것보다는 미래에 대하여 잘 예측한 게, 컴퓨터 하나로 극장 영화를 보는 시대를 예견했다.
슬하에 1녀를 두고 있었으며, 1984년에 이혼했다. 딸은 임성민이 키우고 있었고 전처는 미국에서 생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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