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

田建

생몰년도 미상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전씨 왕조 제8대 군주. 재위 기간은 기원전 264년 ~ 기원전 221년.

즉위 초기에 군왕후가 현명하고 진나라를 섬기는 것이 근엄하면서 제후들과도 믿음이 깊었으며, 제나라는 동쪽 해변가에 위치하고 진(秦)나라와 멀리 떨어진데다가 진나라가 날마다 위, 조, 한, 연, 초 등을 공격하자 다섯 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하기 바빠서 전건은 즉위한 지 40여 년이 되도록 진나라의 침공을 받지 않았다.

기원전 259년에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에서 5개 성읍을 진나라에 주고 강화하면서 제나라를 함께 공격하자고 했는데, 전건은 이를 두려워해 사자를 보내 10개의 성읍을 진나라에게 주고 강화를 청했다. 그러자 조나라의 조족이 조나라와 동맹맺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기원전 230년에 세객으로부터 진나라와 연합하면 안된다는 것을 들었다.

군왕후가 죽기 전에 군신들 중 신임해도 좋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전건은 이를 받아적으려 했다가 군왕후가 다시 말하려던 차에 잊었기 때문에 받아적지 못했다. 군왕후가 죽자 후승이 재상이 되어 진나라 첩자의 뇌물을 받아 빈객들을 자주 진나라에게 입조하게 했는데, 진나라에서는 금품을 더 많이 줘서 빈객들이 돌아가 첩자가 되게 했다.

그 빈객들은 침공에 대한 대비를 하지 말고 5개 국이 서로 도와 진나라를 공격하지 않게 했는데, 기원전 221년에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자 전건은 후승의 책략을 듣고서 전혀 대비하지 않다가 임치에 들어오자 백성들은 전혀 저항하지 못했고 전건은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에 투항했다.

제나라가 멸망하면서 진나라는 제나라를 군으로 삼고 전건이 진나라에 입조하려 하다가 옹문을 지키는 사마와 나라에 왕을 세우는 것에 대해 사직을 위한 것이라 했다가 그 사마가 사직을 위해 왕을 세웠으면서 어째서 사직을 버리고 진나라로 들어가냐고 하자 제나라 지역으로 돌아갔다.

즉묵의 대부로부터 진나라에 복종하기 싫어하는 세력을 끌어들여 남쪽에서 왕을 칭한다는 의견을 들었지만 이를 거절했으며, 진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5백 리의 땅을 주겠다고 하자 전건은 그 말을 믿고 진나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전건은 진나라로 인해 공성(共城)의 송백나무 숲 속에 연금되었다가 굶어죽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간신과 빈객의 말만 듣고 나라를 망친 전건을 원망해 "소나무인가? 잣나무인가? 왕 건을 공에서 살게 한 사람들은 빈객인가?"라고 하면서 전건이 빈객들을 신중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