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Monarchy
絶對王政
중세 후기에 등장해 근대의 여명기까지 약 3세기간 유럽에 존재했던 정치제도. 전제군주제와 비슷하게 여겨지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중세 유럽은 수많은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도시 공동체, 장원 공동체, 교회 공동체, 대학 공동체 등이 그것이었다. 이 공동체들은 저마다 외부에 간섭받지 않는 자기들만의 룰을 가지고 있었고, 각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들과 상호 협력하기도 하고 경쟁, 혹은 적대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중 특히 교회와 영주들이 중앙 국가권력에 대항해 왕권의 집중을 견제했던 것이 유럽 봉건사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유럽의 경제가 발전하며 가장 두각을 나타낸 공동체는 도시 공동체였는데, 도시는 제조업과 상업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봉건 귀족들과, 세속에서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교회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도시들은 상공업과 시장의 발달을 보장받기 위해 왕권과 결탁할 이유가 있었으며, 왕권은 정책 수행(전쟁 수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도시들과 결탁할 이유가 있었다.
봉건제하에서 영주가 군사력을, 교회가 사회질서를 장악하고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최고 권력은 국왕에게 있다는 것은 절대 부정되지 않았는데, 최고 권력이 도시의 상공업 경제력과 결합함으로써 영주의 농업 경제력에 기반한 군사력, 교회의 교회세에 기반한 사회기능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중세 전성기 체제가 왕:수많은 공동체간의 세력균형 체제라면 절대왕정기의 체제는 왕+도시:영주, 교회 등기타 공동체간의 세력균형 체제라는 것. 왕권을 견제할 수단 중 하나가 왕권과 결합하면서 다른 왕권 견제 수단의 상대적 약화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기존의 공동체간의 견제 상황에서 왕권과 시민 계급이 다른 공동체를 압도할 만큼 성장한 것이 바로 절대왕정이다.
따라서 사회 질서에 기반해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왕정의 군주는 권력의 기반을 군주 스스로에게 두고 있는 전제군주정(Autocracy)의 군주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전자는 후자와 달리 자의적으로 과세, 재산/토지 몰수, 제도 신설/개정 등을 할 수 없었고, 비록 막강한 권력을 보유했을지언정 그 행동은 교회법, 관습법, 도시 법률 등에 의해 제한받았다. 루이 16세가 삼부회를 소집해야만 했던 이유도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