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군주제

국가 형태의 분류 기준
국체정체
정치제도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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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제공화제
전제군주제입헌군주제
(의원 내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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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공화제
(대통령 중심제)
(의원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인민민주공화제


영어 : despotic monarchy/autocracy
한자 : 專制君主制

1 개요

군주국가의 통치권을 장악하여 단독행사하고 국가기관은 오로지 군주의 권력을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한 정치 제도. 왕정치

전제군주제 국가는 대개 군주 혹은 과 국가가 동일취급되는 것이 특징으로, 한술 더 떠 까지 군주가 지배한다는 왕토사상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21세기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래 목록을 보면 꽤 있다.

군주가 정치를 잘 하면 크게 잘될 수 있고 잘 못하더라도 관료나 정치권의 견제, 민심 등의 존재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잘 굴러가는 체제이다.

이 후 입헌군주제라는 정치제도가 17세기 영국에서 명예 혁명 후에 최초로 생겨났다. 이후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차차 전제군주제 국가들이 차례로 입헌군주정으로 전환하면서 왕권들이 약화되어갔고 이제는 거의 멸종되어가는 추세이다. 덕분에 이제 전제군주정으로 평가되는 나라는 중동 몇몇 나라바로 윗동네 말곤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럽에선 리히텐슈타인이 유일하게 군주가 매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고 있어서 전제군주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는 왕권신수설이 있다.

2 전제군주제의 이모저모

2.1 부탄의 사례

부탄의 왕은 정치 제도를 전제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반대하는 자국 국민과 신하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나라는 결국 왕의 저런 노력 덕에 의회를 가진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다고 한다.

2.2 조선의 사례

조선은 형식적으로 전제군주제 국가였으며, 개화기 때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던 일부 세력에 대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까댔다고 한다.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된 이유가 이들이 공화제를 추진하려 한다는 거짓 보고 때문이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必要韓紙?[1] 법전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 왕은 그 법 위에 있는 것을 전제로 쓰여진 법전이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유교의 통치 이념 자체가 어느 정도는 입헌군주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2], 유가는 이미 법가[3]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여 군주권을 정당화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백성(民)보다는 천(天)의 개념이 절대적 권위의 가장 큰 근거라는 점을 생각하면[4] 근대 법치주의 국가와는 큰 차이가 있다.

대대로 신권이 드셌기에 왕이 뭘 하려고 하면 "아니되옵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삼창하는 신하들이 있기는 했고, 영조세자에게 군포를 내게 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조선이 신권이 강했다고 해도 왕의 권한이 마냥 약했다고 보는 것 또한 겉보기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다.

조선에서도 법적으로 왕은 국가 내에 존재하는 모든 토지와 재산에 대한 전면적인 소유권과 신민들에 대한 완전한 생사여탈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왕과 신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는 기관인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가 존경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해야 하는 그들의 속성 때문이다. 물론 진짜로 임금이 죽여버렸다간 스스로 "나 폭군이요" 하고 선언하는 꼴이라 실제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죽일 권리'가 있다는 것은 중대한 차이점이다. 보통은 그냥 귀 닫거나 파직으로 끝냈다만 연산군 같은 싸이코 폭군이 뜨면 그것도 없는 거고, 숙종송시열을 죽여버린 것처럼 이론상으로는 왕이 마음만 먹으면 제아무리 수천의 제자가 있고 현인으로 칭송받는 거물이라 해도 목이 무쇠로 되어 있지 않는 한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조선에서는 이론적으로 왕은 모든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중론을 취합하여 실행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이러한 관례하에서 이루어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마치 왕들은 모두 우유부단하고, 신하들의 뜻에만 따라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실정치에서 왕이 신하들의 중론을 따르건 따르지 않건 그것은 왕의 마음이었고, 반대로 왕은 마음대로 신하를 파직시킬 수 있고 별 어려움 없이 귀양보낼 수도 있었으며 생사여탈의 권리까지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특히 사림이 대두되기 전인 초기~중기 무렵의 조선의 왕들이 '신하들의 언로'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물론 이 시기에도 한명회와 같은, 그 세력이 하늘을 찌를 듯해서 왕조차도 함부로 어쩌기 힘든[5] 대신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 시기에도 단순히 왕이 절대적이였고 모든 것을 왕이 주도했다고 보기 힘듦을 알 수 있게 해 준다.[6]

여기에 중기 이후의 사림의 대두, 특히 '산림'의 등장은 이러한 기존의 정치 공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7]. '산림'이란 존재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과거에 매달리지 않는다', 즉 정부의 녹을 먹지 않으며, 따라서 왕이 주도하는 조정의 여론몰이에서 자유롭다는 점은 왕 주도하의 여론몰이를 사실상 무력화시켰으며, 향촌의 사족층은 이들 산림을 중심으로 지방에서의 여론을 형성하여 왕이 인위적으로 언로를 통제하는 것을 크게 저해했다. 이는 다시 이러한 지역 기반을 토대로 하는 조정 대신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되어 조정 내에서의 언로 또한 왕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거기다 선조부터 현종 때까지 조선의 왕들은 정통성 측면에서 상당히 불리한 상태였고 이들 향촌 사족과 그들의 대표격인 산림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에, 이전처럼 마음대로 언로를 통제하여 원하는 대로 정국을 주도하기 힘들었다.

이러한 산림의 득세는 조선의 왕들에게는 상당히 큰 장애 요소로 다가왔으며, 결국 정통성이 가장 튼튼한 왕이었던 숙종부터 시작하여 환국정치, 영조의 산림 부정, 정조의 향악 통제 등 지방 여론의 장악에 나서 이를 달성한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등에서 보이듯 정조대가 되면 다시 조선의 왕들은 조정 내에서의 언로와 지방의 여론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8]

따라서 이러한 전후사정을 살펴가면서 실록에서 조정의 논의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조선 정치의 흐름이 아닌, 시기에 따른 왕의 정통성과 정치적 상황, 시대에 따른 향촌 사족층의 영향력의 증감[9] 등을 세부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신하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왕이 흔들려 다녔다거나, 그 반대로 왕이 대부분의 논의를 마음대로 주도했고 조정 내에서의 논의는 왕의 행보를 추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단순화한 의견일 것이다.

신권이 관례적으로 보장을 받았다고는 해도, 유교적인 군신관계는 '충성'을 담보로 하는 관계이므로 현대적인 공화제와는 분명 비교할 수 없다.

2.3 스페인의 사례

스페인은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했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국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제를 유지한 바가 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과거 프랑코가 휘둘렀던 절대권력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상태였고 스페인 왕국프랑코 체제의 연장선이라 가능했던 일. 하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민주화를 이룩하여 스페인의 전제군주정 체제는 금방 막을 내렸다.

3 현실의 관련 국가와 통치자

법상으로는 전제군주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제군주국 포함. 애매한 경우 ★표.

  • 사우디아라비아
  • 바레인
  • 바티칸
    •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교황이 전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전제군주제 국가로 분류되기는 한다.
  • 북한
    • 북한의 현 상황은 독재자가 자신의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준 정도의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이미 3대째 세습이 이뤄지기도 했거니와, 북한 스스로가 특정 개인을 넘어선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로 이어지는 계보와 그 혈통을 실질적인 왕족개념으로 격상시키면서 군주제적 면모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바티칸처럼 최고통치자가 왕이 아니어도 충분히 군주제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은 스스로를 왕국이 아니라 공화국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1990년대만 해도 김씨 왕조국가라고 부르는 것이 비꼼의 일종이었지만 지금은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한 셈. 사실 북한의 현실이 왕국이나 다름없는데 끝까지 공화국이라고 우기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지들이 내세우는 체제가 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김정은이 진짜로 칭왕 또는 칭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근본도 없는 이런 놈들을 인정해줄 왕실은 없다.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트 황가도 유럽 군주들에겐 그저 역적 또는 광대나 다름없었다. 만약 북한이 19세기에 세워졌다면 김씨일가는 진작에 주저없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하는 짓은 공화정 국가들보다 체통(?)을 중시해야 할 군주제 국가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무뢰배, 아니 막장 도적집단이다.
  • 브루나이
    • 브루나이 국왕(술탄) 하사날 볼키아. 말 그대로 왕
  • 아랍 에미리트
    • 이 국가 자체는 7개의 왕정국가의 연합이다. 아랍에미리트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공화정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애초에 대통령직은 아부다비 왕(에미르)이 세습하는 개념이다. 그 외에도 부통령직은 두바이의 아미르가, 다른 각료직도 다른 5명의 아미르들이 세습하고 있다. 그래도 중앙 정부 자체는 공화정처럼 운영되고 있기는 하다. 프로이센 왕이 대통령[10]직을 맡았던 북독일 연방(1867~1871)과 비슷하려나
  • 오만
    • 몇 해 전 의회가 생기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전제군주정에 가까움
  • 카타르
    • 형식상 입헌군주제 형식을 갖추었고, 국왕이 비교적 청렴한 편인데다 개혁 정치를 하고 있고 그 결과가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왕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전제군주제다.
  • 쿠웨이트
  • 통가
    • 일단은 입헌군주제로 의회가 있기는 하지만 총리와 각료를 국왕이 임명한다는 점과, 의회를 구성하는 30명 중 이 각료가 12명, 귀족 중 선출되는 의원이 9명으로 2/3를 넘는다는 점에서 전제군주제에 가깝다. 평민이 선출 가능한 의원은 단 9명이다. 그나마 2005년까지 공식적으로 전제군주국이던 것이 투포우 5세의 즉위로 상당부분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2006년 11월 16일에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반란(...)으로 번지고 만다. 반란은 끝났지만 경제는 피폐해져 결국 중국에게 돈을 빌리게 되었고 이것이 빚더미를 갚아야 되게 되었고 결국 중국의 영향력에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11]
  • 스와질란드
    • 에이즈 감염률이 40%에 달하는데도 국왕은 부인을 13명이나 두고 호화판 생활을 일삼고 있어서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단 형식상 입헌군주제이고 의회가 존재하나, 이 나라 의회의 의원들은 사실상 국왕이 내놓는 정책을 동의하는 거수 셔틀에 불과하다.
  • 모로코
    • 명목상 입헌군주제이긴 한데 총리는 허수아비고 국왕이 사실상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아랍의 봄 열풍 와중에 이쪽에서도 정치 개혁 요구가 있었다.
  • 리히텐슈타인
    • 여기도 명목상 입헌군주제이긴 하지만 대공에게 의회해산권과 의회의 결정을 거부할 권한이 있는 등 군주의 권한이 막강하다.
  • 요르단
입헌군주국이기는 하지만 국왕의 권한이 막강하고,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 지방정부에서도 전제군주제가 시행되는 경우가 있다. 현재의 국가 모습이 형성된지 얼마 되지 않아 과거 각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절 지방 특유의 권력체계를 현재 중앙정부가 존중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다보니 지방정부에도 전제군주제가 남게 된 것이다.
    •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 특별주: 세습되는 군주(술탄) 겸 주지사가 관할한다.
    • 프랑스왈리스 퓌튀나: 3개의 왕국이 연합된 지역으로, 중앙 정부는 프랑스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수반(Administrator Superior)이 관할한다.

4 가상의 관련 국가와 통치자

  1. 독립협회 내에서는 분명히 공화정 설립 주장이 강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완전히 거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이야 몰라도 과거에는 상당히 강경한 주장이었고 민중의 호응을 받기도 어려웠다.
  2. 일단 왕은 백성의 뜻에 의해 추대된다는 이념.
  3. 흔히 법가가 왕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법을 왕의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법가에서 왕은 법률의 집행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근대적인 법치주의 개념에 가까운 것도 아니다. 법치주의 개념이 국민이 지켜야 할 최소한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한다면, 법가는 국가의 모든 것을 법에 의해 규정하고 철저히 그에 맞춰 국가를 운영한다. 모든 권위가 부정되고 철저히 법만이 권력의 근거와 실제가 되는 것이 법가 사상이다. 왕도 법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러한 법을 비난하는 것은 물론 법을 찬양하는 것조차도 국가 이념을 흐릴 수 있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실제로 중국의 법가 사상가 상앙은 태자가 잘못을 저지르자 묵형을 해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겼고, 법을 찬탄하는 백성들도 다 잡아 넣었다. 법가 치하의 왕은 이념적으로 최고 수권자일 뿐이지 국가 통치 이외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실제로는 물론 그럴 리 없었지만. 그러나 법가는 효율성 면에서는 고대 국가의 이념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하지만, 법의 정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역사에서는 이러한 정당성을 유가를 통해 뒷받침해주는 모습이 나타난다. 한무제 때 동중서의 기(氣) 이론이 채택되었음에도 실제 정치는 매우 법술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데서 기인한다.
  4. 단 유교에서는 민심을 곧 천심이라 보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 참작할 여지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천(天)의 속성(道)을 이어받았으며, 따라서 이것이 민본주의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속성은 맹자성리학을 거치면서 세계 자체를 유교 질서 아래에 포괄하는 원리로 발전한다. 법가의 효율성이 훨씬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사상계에서 유교가 끝까지 살아남은 건 이러한 절대적인 정당성과 발전하는 포괄성 때문이다. 조선 말기의 실학자 최한기의 글들을 보면 심지어 서양 과학까지도 기(氣) 철학을 통해 이기론의 아래에 포섭하려고 했으니.
  5. 이론적으로야 왕이 절대적이지만, 현실은 이론이 아니다.
  6. 그러나 한명회 역시 이시애의 난에서 약간 소문이 잘못 돈 것 만으로 감옥 신세를 졌으며 성종시기 명나라 사신 대접을 위해서 왕실천막을 빌릴려고 하다가 자신이 왕으로 만든 성종에 의해 몰락한다.
  7. 다만 이놈의 산림의 존재에 대해서는 상당히 복잡하게 뜯어봐야 한다. 온갖 미화가 이뤄져 있지만, 정계에 진출할 수 있으면서도 자의로 정계에 나서지 않는 형태의 산림은 선조에서 시작해서 숙종에 이르는 지극히 제한적 시기에만 등장했다가 사라지는데, 이 시기는 붕당이 등장해서 다시 대립하고 본격화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애초에 유교는 치국의 도이기 때문에 정계에서 활동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뒤에서 영향력만 행사한다는 이런 형태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8. 다른 이야기이지만, 문제는 정조대의 이러한 언로 통제가 세도정치를 불러오는 데 크게 기여한 측면이 있다. 언로 통제는 당대의 노론에 대항할 다른 관료세력의 준동 자체를 막아버렸기 때문이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정조가 불혹 무렵에 비교적 일찍 죽어버리자 그 폐해가 고스란히 계승된 셈.
  9. 산림의 등장은 붕당 외에도 임진왜란을 비롯한 왜란과 호란의 시기와 연결되어 있다. 이 시기에 산림으로 표현되는 재지사족들은 약화된 영향력을 강화하고 수령과 결탁된 신향들과 영향력 대결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결국 수령의 힘을 등에 업은 신향과의 향전에서 패배하고, 붕당간의 정쟁은 더욱 심화되면서 상당수가 몰락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산림을 해석하게 되면, 산림은 고고한 처사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밖에 없다.
  10. 보통은 '의장'으로 번역하지만 일단 원어에서는 '대통령'과 동일한 단어이다. 애초에 대통령이라는 원래 개념 자체가 군주가 없는 나라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의장이라는 것이니...
  11. [1]
  12. 예외적으로 마모의 경우 벨드 황제가 영웅전쟁에서 사망한 이후 군주가 안나오고 아슈람을 비롯한 몇몇 고위층들이 권력을 나눠서 다스렸다.
  13.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후반부에 밝혀진 사실은 얏타 킹덤 자체가 도쿠로베에의 사기극이었다.
  14. 다만 혈투로 군주의 자리를 얻는만큼 군주가 시원치 않다 싶으면 귀족인 승천자들이 도전해와 찬탈하는 행위가 흔하게 발생한다.
  15. 타이타니아도 명목상 전제군주제지만 작품 초기에는 통치자가 우유부단해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실정이었고, 링폴드는 일종의 연맹왕국 체제다.
  16. 노움들은 지도자인 땜장이왕을 임기마다 투표로 선출하고, 무역왕 갤리윅스는 왕이라기보단 지분이 많은 CEO에 가깝다. 달라란과두제, 나이트 엘프 지도자인 티란데도 옛날 아즈샤라급의 여왕 정도의 지위는 아니며 현재 카즈 모단은 전제군주가 아닌 세 망치단 의회가 다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