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멜라트와 사라진 도락의 보물

0bd856ac74b619139089.jpeg

제임스 멜라트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발표한 도락의 보물에 관한 기사

영어로는 "Dorak Affair(도락 사건)" 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 영국터키를 발칵 뒤집어놓은 고고학계의 흑역사다.

1 사라진 보물

사건의 발단은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였던 제임스 멜라트가 이스탄불을 출발에 이즈미르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면서 시작되었다. 멜라트는 건너편 자리에 앉은 소녀가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팔찌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당장 멜라트는 자신이 고고학자라고 소개하면서 팔찌를 볼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소녀는 팔찌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집에 팔찌 말고도 많은 보물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혹한 멜라트는 소녀를 따라 소녀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 후 소녀가 꺼낸 보물들을 본 멜라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녀가 꺼내놓는 보물들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들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멜라트는 보물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소녀는 사진 촬영은 안되고 스케치는 할 수 있다고 했다. 멜라트는 당장 그 집에 머무르면서 보물들을 관찰하고 스케치하고 상형 문자의 탁본을 뜨는 등의 일을 계속해나갔다. 소녀의 설명으로는 그 보물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도락이라는 마을에서 도굴된 것이라고 했다.

멜라트는 엄청난 고대의 보물들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다른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게 멜라트에게 나중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소녀의 집을 떠난 뒤 멜라트는 1년 후인 1959년 11월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라는 신문에 자신이 발견한 도락의 보물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멜라트의 실수와 누군가 알 수 없는 세력들의 농간 때문에 멜라트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멜라트의 실수는 우선 소녀가 누군지 전혀 파악해볼 생각도 안했다는 것이었다. 멜라트는 소녀의 이름이 안나 파파스트라티이고 주소는 카짐 디레크가 217번지라는 사항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터키 경찰이 조사한 결과 그런 주소도 없었고 그런 소녀도 없었다.

멜라트의 또 다른 실수는 불필요한 거짓말을 한 점이었다. 앙카라의 영국 고고학회에서 멜라트는 새튼 로이드 교수에게 도락의 보물에 대해 보고했는데 도락의 보물에 대해 발표하면서 로이드 교수가 6년 전에 발표한 보물에 대해서 이제 발표해도 좋다라고 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이는 사실 도락의 보물에 대해서 밤새 연구하면서 소녀와 한 집에 있었기 때문에 괜히 부인이 오해할까봐 꾸며낸 거짓말이었지만...

한편 멜라트는 도락의 보물에 대해 발표하기 전에 터키의 문화재청에 글을 발표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터키의 문화재청에 멜라트가 보낸 편지는 중간에서 사라져 버렸다. 멜라트는 편지가 잘 도착했겠거니 생각하고 도락의 보물에 대해서 발표했다.

그러나 멜라트의 편지를 받지 못했던 터키 문화재청은 노발대발했다. 관리들이 당장 찾아와 보물을 왜 발견해놓고 알리지 않았느냐, 보물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라고 따졌다. 멜라트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전부 제공했지만 멜라트가 아는 정보는 다 허위였다.

멜라트의 실수와 알 수 없는 세력의 농간으로 인해 멜라트는 터키의 국보급 유물들을 빼돌린 파렴치로 몰렸다. 터키의 신문 "밀리예트" 는 멜라트가 보물을 빼돌렸다는 추측 기사들을 남발했다.

터키 경찰의 조사로 멜라트가 보물을 빼돌리지 않았고 그도 피해자였을 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터키 국민들은 멜라트를 불신했고 터키에서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들을 몇 차례나 한 적이 있던 멜라트는 결국 터키에서 추방당하고 터키의 고고학 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에 참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고초를 겪던 멜라트는 겨우 1961년 차탈 휴윅이라는 아나톨리아의 중요한 신석기 유적을 발굴하여 재기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멜라트가 보았던 도락의 보물은 행방이 묘연하다. 멜라트가 이런 일을 겪은 이유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멜라트가 일종의 보물에 대한 감정을 해준 꼴이 아닌가라고 보고 있다. 멜라트는 이미 그 당시 저명한 고고학자였고 이런 멜라트가 도락의 보물을 관찰하여 이 발견을 발표하게 되면 도락의 보물의 가격은 더 높아질 것이었다. 그래서 도굴단이 멜라트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다.

어쨌든 이런 흑역사를 겪은 멜라트는 2005년 은퇴하여 현재 부인과 잘 살고 있다고 한다.

2 멜라트의 조작설?

그런데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보물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멜라트가 '공명심 때문에 사건을 조작했다' 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의 미술 칼럼니스트인 수잔 마조르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멜라트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도락 보물의 존재를 공개한 뒤에 이 보물의 발견에 대해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사진 촬영을 하지 못해 탁본과 스케치만으로 발견을 공인받으려 하자 학계에서는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멜라트는 안나 파파스트라티가 보물 발견을 공개해도 된다고 보낸 편지를 증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잔 마조르의 분석에 의하면 이 편지의 구성이 멜라트가 쓴 편지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멜라트는 편지에 날짜 표시를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로마 숫자로 썼는데 안나 파파스트라티가 멜라트에게 보냈다는 편지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날짜를 표시했다는 점.

또한 일각에서는 도락 보물을 훔쳐냈고 이를 밀거래한 걸로 의심되는 도굴단의 실체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도굴단이 철저한 보안을 통해 보물을 밀거래했을 지라도 어딘가에는 흔적이 반드시 남게 되어있으며 또한 멜라트가 발견했다는 보물이 아무리 비밀리에 돈 많은 수장가의 손에 떨어졌다 해도 나중에 가면 한두 개 정도는 미술 시장에 흘러나와야 할 텐데 전혀 그런 유물이 미술 시장에 나온 바가 없기 때문에 애당초 보물의 실체가 있기는 한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는것.

이때문에 수잔 마조르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멜라트가 학자의 공명심으로 있지도 않은 보물을 날조해냈고 이 보물이 날조된 것이란 것을 숨기기 위해 있지도 않은 안나 파파스트라티와 도굴단의 존재까지 만들어내 자신은 도굴단에 이용당한 것이라는 식으로 연극을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고고학자들은 멜라트의 스케치와 탁본을 집중 분석한 결과 멜라트가 비록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 등의 기본적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문제이지만 그의 스케치나 탁본은 매우 상세하다는 점에서 있지도 않은 가공의 보물을 상상으로 그려낸 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또한 보물에 대해서 6만여 단어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과연 가공의 보물을 이 정도로 자세히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멜라트가 불필요한 거짓말을 한 점, 밀거래된 거라는 도락 보물이 2012년 현재까지도 종적이 묘연하고 미술 시장에 한 점도 흘러나오지 않는 것 등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 멜라트의 조작설을 주장하는 수잔 마조르의 칼럼. 영어가 된다면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