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스키스/음반 및 활동

1 개요

당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97년 4월 15일 데뷔 이후 99년 1월 3.5집 활동 마감까지 엄청난 활동을 보여줬다.[1] 그 기간 동안 정규 앨범 3개[2], 스페셜 앨범 1개[3], 영화, 뮤지컬, 광고, 콘서트 등 휴식 기간이 없을 정도로 빡빡한 활동을 했고, 최근 예능에서 멤버들이 당시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는 아예 내용을 모르는 채로 현장에서 대사 외워서 찍었고, 노래 녹음도 다같이 모여서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속사에서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스케줄 통보만 계속 했다고 한다. 은지원은 매니저가 조금 자라고 집에 데려다 주길래 씻고 잘 준비를 했는데 매니저가 금방 다시 데리러와서, 빡친 나머지 뒤돌아 누운 채로 'XX, 너 같으면 일어나고 싶겠냐?'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출연 안한 예능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후 처음으로 휴식기 다운 휴식을 가지고 99년 9월 4집으로 컴백했는데, 그동안은 그렇게 활동이 많다가 마지막 4집 앨범 때는 전에 비해 스케쥴도 적어지고 활동기간도 짧아졌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 불길한 예감이 돌았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휴식기간 등 제외하면 2년여 빡세게 활동한 것인데, 이런 짧은 기간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될 임팩트를 남긴 것은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톱아이돌의 스케쥴도 살인적인 것을 보면 소속사의 입장도 있긴 할 것이다.

2008년 7월 21일 놀러와 힙합특집에서 게스트들이 잠수 탔던 일화를 밝힐 때, 은지원도 젝키 활동 중 잠수탔던 일화를 밝혔다.해당영상 당시 방송이 너무 많고 아무 상의 없이 스케쥴을 계속 잡아서 멤버 단체로 잠수를 탔다고 한다. 잠수기간은 2주정도에 생방만 한 4~5개 펑크를 냈다고 한다ㄷㄷㄷ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패널들이 놀라며 그렇게 했는데 방송가에 어떻게 복귀했냐고 묻자, 자기들은 당시 너무 어렸고 해결은 매니저 형님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껏 잠수탄다는 것이, 멤버 집에 단체로 숨어서 매니저가 데리러 오면 부모님한테 '엄마, 나 오늘 없다 그래' '오늘 저희 안 온거에요'라고 시켰다고 한다. 패널들은 '거의 초딩수준이다' '소속사가 순진하다'는 반응이었다. 복귀 이후 방송국에 사죄하는 의미로 스케쥴이 2배 늘었다고 한다. 심지어 H.O.T.가 펑크낸 스케쥴도 대신 뛰어줬다고 한다. 제일 먼저 복귀하자고 한건 은지원이었고(리더라서 제일 크게 혼날 것 같았다고 한다. 근데 자기가 잠수타자고 제안한 것이 함정), 끝까지 반대를 하며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이 고지용이었다고 한다. 패널 반응은 엄마 집에 숨어서 뭔 본때냐고 빵 터졌다.[4][5]

2015년 4월 20일 김창렬의 올드스쿨에 김재덕이 출연했을때, 위 놀러와 방송에 나온 잠적 사건에 관해 김재덕에게 물어봤다.영상기사 그런데 전술한 은지원이 말한 잠적 사건과는, 기간이며 정황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은지원이 말한 잠적 사건 이후 또 터진 다른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6] 김재덕 말에 따르면 2주는 아니며, 시기는 3~4집 쯤의 젝키 막판 상황이었다고 한다. 호텔에서 멤버 6명이 모여 이틀 정도 있다가,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제주도인가 부산으로 다 같이 내려가려고 했다. 사무실은 난리가 나서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6명이서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갔는데, 그때 키 큰 매니저한테 잡혔다고 밝혔다.이 말을 들은 김창렬은 '아, 기영이'라고 바로 김기영 매니저임을 알아차렸다. 도망가려고 했던 이유는 스케쥴이 많아서 그랬던 것도 있고, 어린 마음에 머리가 커지면서 회사랑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회사 말을 안 따라줬다고 하면서, 거만해졌다고 밝혔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어휴 고맙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시다니."라고 할거라고 대답했다. 당시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 스케쥴이 너무 많아 힘들었냐는 질문에는,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멤버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밝혔다. 놀 때도 같이 다녔다고 한다.김창렬曰 '그러니 제주도로 6명이서 튈려고 했겠지'

2 음반

2.1 정규앨범

발매일제목활동곡판매량(공식판매량/비공식판매량)
1997.05.141집 학원별곡학원별곡/폼생폼사/연정/배신감/기억해줄래520,000장/850,000장(최소), 900,000장(최대)
1997.11.012집 WELCOME TO THE SECHSKIES LAND기사도/탈출/거절의 이유/말괄량이 길들이기700,000장/850,000장(최소), 900,000장(최대)
1998.07.153집 Road FighterCrying Game/Road Fighter/무모한 사랑360,000장/700,000장
1998.10.303.5집 SechsKies Special커플/너를 보내며305,307장(음협), 600,000장(한음통연)/1,000.000장(최소), 1,200,000장(최대)
1999.09.094집 Com' BackCom' Back/예감(豫感)/그녀가 남기고 간 선물/그대로 멈춰350,128장(음협), 420,000장(한음통연)/840,000장(최소)

2.2 비정규앨범

발매일제목주요 수록곡판매량
1998.04.29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MBC 어린이 뮤지컬)천년의 사랑/형제가 너무 달라/라이언 칼의 수호자
1999.03.01Sechskies Live Concert학원별곡/WELCOME TO THE SECHSKIES LAND/Road Fighter/SechsKies Special200,000장
1999.04.261020MIX커플/지금이야/무모한 사랑
2000.05.31Blue NoteBye/약속/The last time/Pain87,000장

2.3 디지털 싱글

2.3.1 Thanks

해체 후인 2000년 7월 31일, 팬들에게 감사의 의미가 담긴 곡 "Thanks"를 O2MUSIC이라는 음악사이트를 통해 발표했다.[7]
젝스키스의 공식적인 스케줄과 음반은 아니며 일체의 공연이나 방송 활동도 없었다.

2.3.2 세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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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7일 16년만의 신곡 세 단어가 디지털 싱글로 공개되었다. 공개되자마자 멜론 실시간 1위에 올라섰다
애당초 예정된 미니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것을 콘서트에서 선공개 했는데, 부산 원아시아 페스티벌에 나타난 팬들에게 감동받은 양현석이 선공개된 이 곡을 먼저 발매하기로 결정해서 발매 14시간 전에 선공개 소식이 올라왔다. 90년대 아이돌 마저 YG 스타일로 만드는 YG의 위엄

3 영화 및 뮤지컬

3.1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3.2 세븐틴

4 라디오

4.1 젝키의 FM 플러스

젝키의 FM 플러스는 1999년10월 18일부터 4월 16일까지 진행하였다. 이 링크에서 들을 수 있다.#

5 예능

6 CF 및 상품

7 기타 활동

8 결론

오늘날은 스케쥴 굴린 만큼 케어나 대우를 해주며 최대한 잡음을 줄이고 있는데, 당시 젝스키스의 경우 그런 잡음을 없앨만한 환경을 갖추진 못했다고 보인다. 결국 이는 해체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다만 이렇게 죽어라 활동한 덕분에 H.O.T.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2011년 해피투게더에서 은지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해당영상 6분 20초부터, H.O.T.와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데뷔초에는 인기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H.O.T.는 활동 후 휴식기가 있던 반면, 젝스키스는 전혀 쉬지 않고 1년에 2~3장 씩 앨범을 내며 활동해서 팬을 늘려가,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쉬지 않고 활동한 기간(97년 4월 15일 ~ 99년 1월)의 마지막인 3.5집 커플에서 H.O.T.를 이겼었다. 강타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젝키의 3.5집 커플에 처음으로 지면서 위기감을 느꼈었다고 한다. 아무튼 팬들 입장에선 음악방송이며 각종 예능에서 거의 1년 내내 젝키를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때에 익숙한 일부 올드팬들은 재결합 후 젝키의 신곡 활동이 2~3주란 소리를 듣고 적응 못하고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젝스키스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스케쥴이 빡셌던 것에 대해서 3년 내내라는 말을 붙이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99년 1월 이후로는 엄청난 스케쥴을 소화하진 않았다. 9월달 4집으로 컴백했을 때는 오히려 방송이 왜 이렇게 적냐며 팬들이 항의를 할 정도였다.
  2. 당시에는 싱글이나 미니앨범의 개념이 거의 없었고, 오로지 정규 앨범만 낸다음 앨범의 곡중 2~4곡 정도를 타이틀곡으로 정해 수개월간 연속적으로 활동하는게 기본 패턴이었다. 그러나 젝키는 이 정도가 심해서 앨범 활동 종료후 한달만에 새 앨범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앨범 한장에 4곡 이상씩 선정해 계속 활동을 시키기도 했다. 그에 따른 안무증가와 쉴틈없는 스케쥴은 덤. 게다가 이재진, 김재덕은 안무를 직접 만들기까지 해야 했으니..
  3. 3.5집 스페셜 앨범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정규앨범이다. 영화 세븐틴의 OST로 기획된 음반에 수록될 곡이 늘어나자 아예 젝스키스 정식 앨범으로 출시 한 것.
  4. 아마 소속사에서 어느 정도 방조했다고 보인다. 뻔히 멤버 집에 모이는데, 집앞에서 지키고 서서 강제로 잡아오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반발이 더 심해졌을테니 제 스스로 복귀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보인다. 위 패널들 반응처럼 그냥 평범한 연예인이었으면 방송가 복귀가 어려울 정도의 잠적 스케일이지만, 당시 DSP 이호연 정도면 그 정도 무마시킬 파워는 있었다.
  5. 위 영상에 대한 팬들 반응은 소속사가 썪을 놈들이라며 멤버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의견이다. 물론 소속사가 스케쥴을 빡세게 돌린 점은 맞다. 하지만 위 사건에 대해서는 소속사가 더 불쌍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위 방송의 패널 반응에서 보듯이, 2주 동안의 잠적은 '그렇게 스케쥴 펑크내고 방송가에 어떻게 복귀했냐'고 놀랄만한 스케일이다. 그 기간 동안 소속사는 방송가에 죽어라 사죄하러 다녔을 것이고, 이후에는 다시 방송가에 복귀시키려고 또 죽어라 뛰어다녔을 것이다. 사실 요즘 저랬으면 트와이스 급이라도 그냥 은퇴각이다.
  6. 일단 은지원이 말한 사건은 기간이 2주인데, 김재덕이 말한 사건은 기간이 겨우 4일 정도다. 잡히는 과정도 은지원이 말한 사건의 경우 자발적으로 돌아간 것인데, 김재덕이 말한 사건은 공항에서 매니저에게 강제로 잡혔다. 은지원이 말한 사건은 이후 방송가에 사죄하는 의미로 H.O.T.가 취소한 스케쥴까지 다 뛰어주며 전보다 스케쥴이 2배 늘었다고 했다. 그런데 김재덕이 말한 사건은 3~4집 때 쯤의 막바지라고 하는데, 젝키의 막바지 상황은 스케쥴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팬들 사이에 불안한 예감이 감돌 때였다. 정황이며 시기를 볼 때 다른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 당시엔 디지털싱글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었으나, 실물CD가 발매되지않고 음악사이트를 통해 mp3와 뮤직비디오만 공개되었기에 지금의 디지털싱글의 시초격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