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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최근 모습)
이름 | 주세페 시뇨리 (Giuseppe Signori) |
생년월일 | 1968년 2월 17일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알자노 |
포지션 | 스트라이커, 윙어 |
주발 | 왼발 |
신체 조건 | 171cm |
소속 클럽 | 레페 (1984 - 1986) 피아첸자 (1986 - 1989) 트렌토(임대)(1987 - 1988) US 포지아(1989 - 1992) SS 라치오 (1992 - 1997) UC 삼프도리아 (1998) 볼로냐 FC (1998 - 2004) 이라클리스(2004 - 2005) MFC 소프론(2005 - 2006) |
국가대표 | 28경기, 7골 |
목차
1 소개
라치오의 황금 왼발
실비오 피올라와 함께 라치오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 171cm의 단신이었으나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 그리고 가공할만한 왼발 킥력으로 90년대 세리에 A 무대를 풍미했다. 특히 킥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로, PK, 프리킥을 전담하기도 했으며 박스 바깥에서 때리는 중거리슛 역시 위협적이었다. PK를 차는 폼이 좀 특이한데, 보통의 선수들은 달려오면서 킥을 하지만 시뇨리는 그런거 없이 디딤발만 딛고 찬다. 그럼에도 상하좌우 가리지 않고 볼을 꽃아넣는 PK 스페셜리스트였다.
2 클럽
인터 밀란의 유소년팀에서 뛰었으나 키가 작다는 이유로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할거라 판단되어 방출되었다. 시뇨리는 3부리그의 레페로 향했고 피아첸자, 트렌토 등의 하부리그를 전전했다. 포지아로 이적한 시뇨리는 1990-91 시즌 팀의 세리에 B 우승을 이끌었고 1991-92 시즌 만 23세의 나이로 세리에 A 데뷔전을 가졌다.
1시즌 뒤 시뇨리는 SS 라치오로 이적했고 데뷔 시즌부터 26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을 수상했다. 시뇨리는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3차례의 득점왕을 수상했다. 매시즌 꾸준히 두자릿수 득점을 해주던 시뇨리였지만 1997-98 시즌 새로 부임한 스벤 예란 에릭손은 그를 주전 선수로 기용하지 않았고, 그는 결국 UC 삼프도리아로 이적했다.
반시즌을 삼프도리아에서 보낸 시뇨리는 볼로냐 FC로 이적했고 인터토토컵 우승에 기여하며 팀의 다음 시즌 UEFA 컵에 출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출전한 UEFA 컵에서는 4강에 오르는 호성적을 거뒀다. 2004년 시뇨리는 처음으로 해외로 이적했고, 행선지는 그리스는 이라클리스였다. 그러나 시뇨리는 5경기에만 출전했고 헝가리의 소프론으로 이적, 1시즌을 활약한 뒤 은퇴했다. 세리에 A 통산 득점 9위, 라치오 통산 득점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남긴 체.
3 국가대표
리그에서는 득점기계로 명성을 떨치던 시뇨리였으나, 국가대표팀의 유니폼만 입었다 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리고 사키와는 불화가 있었는데, 시뇨리를 윙어로 기용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메이저 대회로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참가한게 고작이며 이 대회에서는 무득점에 그쳤다.
4 선수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라디오에서 해설 위원으로 근무하다가 테르나나의 디렉터로 부임했다. 이후 코칭 라이센스 획득을 위해 공부중이라고 한다.
2011년 6월 도박스캔들로 인해 체포당했고 같은해 8월 5년간 축구관련 모든 업무에서 제명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