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


陣形/ Formation

1 개요

군사들이 모여 진을 친 형태. 전술이나 작전의 양상에 따라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 있으며 이루는데 있어 막강한 조직력을 요구하므로 군대라는 조직이 철저한 상명하복 위주의 수직적인 조직을 지향하게 된 큰 요인이기도 하다.

문명이 생겨난 이후, 일정 궤도에 오른 대부분의 문명권들은 타국과 전쟁을 하게 되면 진형과 진법을 거의 필수적으로 익히고 싸웠다. 문명 수준이 발달하지 않은 부족이나 소규모 국가들은 진형을 통한 집단전투보다는 개인의 무용에 의존하는 전투를 하기도 했으나, 세력이 커지고 문명 수준이 어느 정도 발달하면 이들도 거의 대부분 예외없이 진형을 통한 전투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진형 없이 싸우는 난전보다는 진형을 통한 전투가 군대의 전투력 발휘나 전력 손실 최소화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즉, 근대 이전 대부분의 인류가 치른 전투에서 진형은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진형의 유무, 혹은 발달 정도에 따라 그 문명의 발달 및 쇠락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기까지 하다.

냉병기가 차츰 화기로 대체되고, 병사 개개인의 화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근대 이후의 전투에서는 전통적 의미의 진형의 역할은 상당히 퇴색되었다. 진형은 필연적으로 진형 내 병사간의 높은 밀집도를 전제하는데, 개인의 화력이 강력해진 근대 이후에 이러한 밀집 진형은 오히려 적에게 있어 이러한 화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화기가 출현한 근세 이후에는 기존의 밀집도 높은 형태의 진형보다는 얇고 산개된 형태의 진형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개인화기의 발달이 진행될수록 진형의 밀집도는 낮아지는 상호 반비례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밀집진형은 유탄 한 방에 쓸려나가기 위한 자살행위로 보아 철저하게 지양하게 되었으며, 다만 주무장인 총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화력 집중과 사주경계, 유탄과 기관총 등의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느슨한 진형이 고안되었다.

근대 이전, 특히 창, 칼 따위의 냉병기를 통한 전투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형과 진형을 통한 전투를 가장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극에서는 이러한 진형을 짜고 싸우는 전투의 묘사가 사실상 없다시피하며, 회전이든 소규모 전투이든 진형 없이 양측 군대가 엉겨서 싸우는 난전만이 벌어짐은 물론 심지어는 그냥 주인공 장수의 무협활극 원맨쇼로 끝나기도 한다. 때문에 실제 당대 전투의 양상을 사극으로 이해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일단 진형이 유지된 상태에서의 전투 양상은 템포가 상당히 느리고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지루하며[1]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로서 기용되는 엑스트라들을 진형을 재현하기 위해 별도로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한 시간과 비용 또한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거의 모든 국내 사극에선 진형의 존재를 사실상 무시하는 경우가 대다수인지라, 당대 전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진형의 존재를 시청자들은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역사

2.1 근대 이전

전근대 전투의 알파이자 오메가. 사실상 근대 이전의 전투는 전투에 참여한 양 측의 각 부대가 얼마나 진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갈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이는 특히 대규모의 군대가 맞부딫히는 회전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진형이 무너진 부대는 통제가 불가능하고, 거의 100%의 확률로 그 부대의 병사들은 모랄빵이 터져 전력 외가 되어버리며, 옆 부대가 무너지는걸 본 인근의 다른 아군 부대의 사기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전투에 있어서는 지휘관의 전술적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한 축이 사실상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형 하나 때문에 전황 전체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셈.

당대 전투에서 진형을 이룬다는 것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난전을 위시한 개인 전투와 비교했을 때 매우 많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전투에 참여하는 병사들 간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강화시킨다. 이것은 꼭 진형이 존재해야만 나타나는 효과는 아니지만, 진형이란 하나의 군대가 여러 번의 전투에서 항시 훈련받고 계획한 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전투 이외의 상황에서도 병사들을 하나의 부대라는 이름 하에 생활하도록 하고, 전투 시에는 이러한 병사들이 같은 부대에 소속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토대로 진형이라는 실질적인 단위를 통해 인지시킨다. 즉, 병사들의 공포감을 상쇄시키고, 사기 진작에 큰 효과를 가져온다. 나아가, 국가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징집된 병사들 또한 서로간의 면식이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형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여러 명의 병사들이 밀집해 한 몸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과 비교해 지휘관의 통제와 명령 수행이 매우 용이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병사들의 묶음은 굉장한 질량의 상승 효과를 갖는다. 개인 간의 전투에서도 어느 한 쪽의 질량은 전투력에 상당한 보너스로 작용하는데, 여럿이 밀집해서 나타난 질량의 상승 효과는 빈약한 진형을 갖추었거나 아예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상대에게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강력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진형을 이루게 되면 진형을 이루고 있는 병사 개개인은 좌우와 후면을 아군 병사들이 메우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오로지 전방의 적만을 상대할 수 있어 상당히 안전하게 싸울 수 있다. 즉, 병사들의 전투력과 안전성, 사기 진작과 통제의 용이함을 모두 갖도록 하는 것이 진형의 존재인 것이다.

2.2 현대

냉병기 시대의 밀집진형과 다를 뿐, 소부대전술에서의 진형의 중요도는 여전하다. 진형의 성격에 따라 소부대 지휘관, 무전병, 자동화기사수, 유탄수, 일반 소총수를 어디에 배치하느냐, 누가 어느 방향을 보느냐(사주경계)도 화기 시대 진형의 중요한 요소. 보병 뿐만 아니라 차량, 선박, 항공기 역시 진형을 이용해 단독 유닛에게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있다.

  • 종대: 앞뒤 일직선으로 늘어선 대형. 보통 행군시에 가장 흔히 취하는 보병 진형인데, 앞사람 보고 따라가면 되니 좁은 길을 이동할 때 편하고 별다른 지휘 없이도 대형이 유지되므로 지휘도 편하다. 하지만 전방에서 적 기관총이 갈기면 한줄로 쓰러지게 된다. 때문에 안전지역에서 행군할 때만 사용하고, 되도록 2열 이상으로 종대를 나누는 것이 좋으며, 위험하면 즉시 산개하여 다른 진형으로 변형해야 한다. 길이 아주 넓지 않는 한, 여러개의 부대가 이동할 때도 어쩔수 없이 종대형이 되기 때문에, 각 부대 별 간격을 띄우고, 전위, 후위, 대형 내에서 좌우 경계 등의 임무를 주지시켜야 한다. 소인원수의 경계 병력을 따로 전후좌우에 배치시켜서 경계부대로 운용하기도 한다.
  • 횡대: 좌우로 일직선으로 늘어선 횡대형은 전방과 후방으로 화력을 집중하기 좋다. 적진을 향한 최종 돌격진형이 보통 이러하며, 고정된 전선이 형성된 상황(예컨데 엄폐물 뒤나 참호에서 머리만 내밀고 싸우는 교착 상황)에서도 애용된다. 하지만 측면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끄트머리 한 명 뿐이므로(다른 사람은 아군이 사선에 겹친다), 측면에서 매복당하면 종대가 정면 기관총에 당하는 것과 똑같은 피해를 입는다. 적이 횡대로 화력을 집중하고 있으면, 아군 일부를 우회시켜서 적의 측면을 찌르게 하는 것이 보병소부대전술의 기본이다. (혹은 적의 횡대 돌격을 유도하고, 올거라 예상되는 위치에 크레모아를 배치해서 쓸어버리거나) 돌격시에도 횡대를 제대로 유지하고 일제히 움직이기도 힘들다. 즉 대형이 흐트러지기 쉽고, 간격이 일정 이상 벌어지면 진형의 효과가 떨어지게 된다. 생각보다 지휘에 난이도가 있는 대형.
  • 다이아몬드 대형: 적진 경계 이동시에는 다이아몬드형 진형을 많이 쓰는데, 전후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병력의 절반~3/4가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 사주경계시에도 네 방향을 보도록 경계병을 배치시키므로 사주경계에 가장 유리하다. 물론 진형을 유지한 채로 이동해야 하므로 이동속도는 느린 편.
전차의 경우에도 정차시에 기본적으로 취하는 대형 중 하나. (차량을 세우는 방법에 따라 코일과 헤링본 형태로 나뉜다)
  • 삼각진형, 혹은 웻지(쐐기), 혹은 스피어헤드: 말 그대로 병력을 삼각형으로 배치. 돌파력과 화력 집중력이 있는 대형. 과거의 밀집진형에 비해 간격을 넓게 벌리고, 삼각형 내부에 되도록 병력을 두지 않는다. (당연히 유탄과 기관총에 약하고, 앞사람이 방해돼서 어디로도 총을 쏘지 못하는 병력이 생기니까) 하지만 횡대형과 다이아몬드 대형을 섞은 효과를 내고, 보병 경계행군 대형과 전투대형 모두 쓸만한 편이다.
보병 뿐만 아니라 전차와 보병전투차 역시 이 대형(아머드 스피어헤드라고 부른다)을 곧잘 취한다.
  • 역삼각진형(혹은 V 대형, 역 쐐기): 중앙이 돌출하는 삼각진형과 정 반대로, 중앙이 후위에 위치하는 형태. 횡대처럼 전방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고, 측면에서의 공격에도 강한 편이며, 한쪽이 적을 교착시키는 동안 다른쪽이 우회하여 포위하기도 적합, 하지만 양 끝단의 이동속도를 맞춰서 대형을 유지하기가 삼각진형보다 좀 어렵다.
  • 2중 삼각진형, 혹은 화살 진형: 삼각 진형 2개를 앞뒤로 세우는 형태인데, 소대는 보통 2개 분대로 나뉘므로 각각의 분대장이 삼각진형을 짜는 구성이다. 각 분대가 전후방 사주경계를 맡을 수 있고, 적의 매복을 당하면 아직 공격받지 않은 후방 분대가 우회기동할 수 있다. 때문에 행군 산개 대형으로 많이 쓰인다. 삼각진형보다 피해분산과 정찰에 적합하다.
  • 사다리꼴, 혹은 대각선 진형: 기울어진 사선형 대형. 전방과, 기울어진 방향 한쪽의 측면으로 최대 화력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더 큰 상위 부대의 측면 경계 부대가 취하기 쉬운 진형.
실내전에서도 대형의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방과 통로, 장애물로 가득 들어찬 실내는 코너 하나를 돌아가고 방에 돌입할 때마다 적의 매복이 있을 수 있기에, 돌입 순서, 각자 사주경계하는 방향을 더더욱 신경써야 한다. SWAT 실내전 전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전근대 전투 대부분의 사상자는 전투를 치를때가 아닌 한쪽의 군대가 무너져 패주할때 나온다. 즉 진형이 유지된 상황에선 굉장히 적게 나온다는 것. 진행이 느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