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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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應彦

1879년[1] ~ 1915년 11월 4일

1 소개

최후의 의병장

2 행적

출생지는 평안남도 성천이라고 전해진다.

1907년 항일 의병 투쟁에 뛰어든 채응언은 황해도를 중심으로 함경남도, 강원도, 평안남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백년산 호랑이라 불리며 전설적인 의병장으로 불렸다. 주로 일본의 헌병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했다고 하며 그의 목숨에 현상금이 내걸렸다고 한다.

1915년 그는 고향 성천에서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위치가 노출되어 일본 헌병들에게 추적당했고 격투 끝에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는 평양 형무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순국하였다.

채응언이 죽은 뒤 의병활동은 거의 명맥이 끊어지게 되었다.의병활동이 사라졌다고 하기 뭣한게 국권피탈로 조선이란 나라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 독립군 활동이 의병활동을 계승했다고 봐도 좋다. 실제로 의병활동을 하던 이들 중에서 독립군이 된 이들이 많다. 즉 국내의 게릴라로는 한계가 있으니 본격적인 해외를 근거지로한 독립활동이 시작된 것.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1. 1883년생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