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1946년 1월호 표지 원안 사진.
2013년 리셉션장에서. 오오 ㅎㄷㄷ... 1931년생 현역 모델
Carmen Dell'Orefice 1931.06.03 -
1928년생 모델 다프네 셀프 옹에 이은 최고령 현역 모델이자 패션 모델역사계의 레전드 전부.
도비마, 도리안 리 ,수지 파커[1]등과 함께 20세기 유명 모델 제1세대를 대표하던 패션 모델이며 80대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패션계의 살아있는 역사.
1931년 뉴욕에서 이태리계와 헝가리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하던 부모덕에 어린 시절은 위탁 가정과 친척집을 오가는 불안한 시기를 보내었다. 10대 초반 모델이 된 후에는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지만 가계를 지탱할 만한 수입은 얻지 못해,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닐 정도였다고.심지어 먹는 것마저 부족해 몸이 너무 말라 디자이너들이 샘플옷에 옷핀을 달아 옷을 줄이기도 했다.
이게 패션계도 트위기의 등장이전에는 깡마른 몸에 그다지 열광하지 않았다.40년대 중반에서 50년대는 2차 대전 당시의 활동적인 남성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크리스티앙 디올로 대표되던 여성미와 마릴린 몬로같은 육감적인 여성미의 시대였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사회에서 일할 일손 자체가 부족했다. 전통적인 가정의 여성을 바라다가는 당장 죽을 지경이니 여성들이 공장으로 나가게 되었고,이전의 여성들이 도맡아 하던 업무 외에 용접,기계 등의 영역도 여성들로 부족한 일손을 메꾸어야 했다.당연히 조신하고 단아한 처자보다는 씩씩한 톰보이형 여성이 추세였다.
이러다보니 초기에는 보그 최연소 모델 등의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그녀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어 소속사에서는 재계약을 거부하게 된다. 서구 패션의 흐름을 보면 여성 인권 및 사회의 소수자 인권 운동이 활발하던 진보의 시기에는 이상적인 여성상도 마르고 중성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었고,반대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는 볼륨감있는 여성이 인기였다. 또 같은 시기에도 1920년대의 플레피들이나 18,19세 유럽 문단이나 예술계같이 일종의 반동적인 집단에서는 또 여성적인 굴곡의 미인보다는 깡마르고 반항적인 여성이 인기였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화할수 없는 것이다.한국의 경우 마른 남자가 마른 여성을 선호하지 않고,살집 많아 고민인 남성이 마른 여성을 선호하는 듯. 위키니트들은 그냥 대충 치마만 두르면 환영한다더라
실제로 그녀가 모델로서 대성공하게 된 것은 마른 몸을 키워 볼륨감있는 몸매가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이때 너무 말라 사춘기 증세도 제대로 안 보인 몸에 의학적인 도움으로 체지방을 늘리게 했다고 한다. 50년대 전성기 때 카르멘의 몸값은 시간당 300달러였는데, 지금으로 따진다면 시간당 3000달러의 가치이다.
1958년 결혼 후 은퇴하지만 20년이 지난 1978년 이혼하면서 다시 패션계로 복귀한다. 물론 젊은 시절같은 활동은 아니지만 70대에도 아이작 마즈라히 포 타겟,롤렉스 등의 모델로 나섰고,패션잡지에서 노년 모델이 필요한 곳에는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서양인치고 곱게 늙은 모습이고 타고난 체질이 말라서인지 나이들어서도 미국 사이즈 6,8(한국옷 66,77,참고로 카르멘 여사의 키는 178센티이다)을 유지하고 있다.무대와 화보를 장악하는 포스면에서는 젊은 모델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사적으로는 인복이 없는 편이었다.어릴 때는 무책임한 부모 덕에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눈칫밥신세였고,모델 시기에는 어머니에 남자들이 카르멘을 뭔 봉 취급하며 금전적으로 착취했다. 3번의 결혼이 모두 실패하는데 78년 모델로 재데뷔한 계기 중 하나도 금전적인 문제였다. 78년 이후 나이가 든 후에 사람보는 눈이 성숙해져서인지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게 되지만, 이때는 또 하필 주식투자에 실패하는 불운이...당시 카르멘에게 남자친구를 소개시켜 준 인물이 버나드 매도프라고 위키페디아에도 실릴 정도의 사기꾼이었고.[2] 그 인간 덕에 쫄딱 망해버린 것. 다행히 소개시켜 준 남자는 좋은 사람이었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