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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카발레세에서 일어난 케이블카 추락사고에 대한 문서로, 1976년, 1998년에 각각 일어난 두 사고를 다룬다.
2 1976년
1976년 5월 2일,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북동쪽으로 4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스키 리조트의 케이블카 와이어가 끊어졌고, 케이블카는 200미터가량 추락한 뒤 산에서 300미터를 미끄러지다가 목초지에서 멈췄다.
실종자 1명[1]을 포함해 4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2] 생존자는 단 1명이었는데 14세의 소녀였다.
케이블카는 성인 40명(약 3,200kg)만을 태울 수 있었는데 탑승자 중 어린이들이 많아서 탑승제한이 무시되었고, 두 가닥의 케이블이 겹치면서 하나를 잘라낸 것이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후 관련자 중 4명이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3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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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고 과정
1998년 2월 3일, 미 해병대의 애쉬비 대위는 조종사 진급 뒤 마지막 임무인 전파방해 장비 작동시 저공비행으로 피하는 연습을 치르기 위해 오후 1시에 항법사 조셉 슈와이처, 레이너 대위, 시그레이브스 대위와 함께 EA-6B 프라울러에 탑승했다. 항법사 조셉이 길을 정한 뒤 조종사인 애쉬비 대위에게 길을 알렸고, 오후 2시 35분, 콜사인 Easy01 프라울러가 이륙했다.
2시 52분, Easy01 프라울러 기는 고도 350미터 이하 비행금지 명령을 받지만 하강 중 레이더 고도계에 이상이 생겨 최저고도 이하로 내려가면 울려야 할 경고음이 나오지 않았다. 기기 자체가 오래되어서 자주 있던 문제였고 조종사는 고도계를 껐다 켜서 문제를 해결했다.
3시 13분, 항법사가 위치(대략 46.283733°N 11.467237°E)를 확인하던 도중 눈 앞에 나타난 6센티미터 굵기의 와이어를 발견했다. 와이어를 피하려 애썼지만 오른쪽 날개가 와이어와 시속 800킬로미터를 넘는 속도로 부딪치며 4분의 1 가량이 찢어지고 와이어가 끊어졌다. 와이어가 끊어지는 소리는 계곡에 크게 울렸고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해서 밖에 나왔다가 지나치게 낮게 나는 비행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하고 소방서에 신고한다. 비행기는 비상탈출하기 위해 다시 상승했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관들은 비행기 추락에 대비해 불을 끌 준비를 한 상태였으나 더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비행기가 자른 와이어는 케이블카의 와이어였고 와이어가 잘리면서 케이블카가 추락해 안에 탑승했던 모든 사람이 사망했던 것이다. 추락의 충격으로 케이블카는 납작해졌고 눈밭에는 피가 튀었다. 소방관들은 케이블카 속에서 시체를 꺼내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유압조절장치가 고장난 상태에서 관제탑과 교신에 성공해 연료가 새는 상황에서 기지의 5번 활주로에 비상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 앞에 앉았던 애쉬비 대위와 조셉 항법사는 바로 내리지 않는[3]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이후 지휘관은 이 4명에게 비행기가 케이블카 와이어를 끊는 바람에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후 시체가 수습되면서 사망자는 더 늘어나 독일인 8명, 벨기에인 5명, 이탈리아인 3명, 폴란드인 2명, 오스트리아인 1명, 네덜란드인 1명, 총 20명의 사망자의 시체가 수습됐다.[4]
3.2 사고 여파
6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미군의 실수로 사망한 가운데 사건에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쏠렸다. 이후 군 당국이 손상된 항공기부터 먼저 조사하려다가 분노한 지역사회에서 반미 시위가 벌어져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던 차까지 불타는 등 폭력사태가 일어나고, 언론에서는 미국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거나 미국이 자료를 조작해 보고하려 한다는 설까지 나오는 등 적대적인 기사를 써내 사태가 심각해졌다.
3.3 사고 조사 과정
이후 유럽 주재 미 최고 사령관이 조사권을 NCIS(해군 범죄 수사대, Naval Crime Investigation Service)가 아닌 해병대의 마이크 더롱 장군에게 넘기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결국 해병대 지시하에 NCIS가 조사, 해병대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식으로 결정됐다.[5]
맨 먼저 레이더 고도계에 이상이 있어서 사고가 발생한 것인지 조사했으나 레이더 고도계는 문제가 없었다. 이후 항공기 내부에서 카메라 촬영이 있었다는 사실[6]이 밝혀지지만 4명은 촬영을 부인했다. 항공기 내에서 비디오 테이프 비닐이 발견된 이후에도 부인은 계속됐다. 이후 조사결과 비행기는 최저고도와 최고속도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고[7] 해병대가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면 형사고발이 이뤄질 상황이었다.
토머스 대령은 내부조사에 착수해 해병대 관점에서 바라보려 했지만 사건은 이미 국제 외교문제로 악화됐고, 백악관에서는 빌 클린턴대통령이 이탈리아 총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이탈리아 총리가 미군이 이탈리아 내에 주둔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져 미국의 유럽에서 군사적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지휘관은 조사 중지 명령을 내렸고, 수집한 정보를 언론과 정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벗으려 애썼다. 보고서엔 NCIS와 해병대의 정보만이 적혀졌고, 토머스 대령은 NCIS의 증거를 확인한 뒤 군의 조사 관행에 따라 추가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승무원들의 비행 기록을 조사했는데 애쉬비 대위는 당시 F-18 프로그램에 선발될 정도로 평판이 좋았으나 예산축소로 승무원들의 비행 시간이 줄어들어 6개월간 계곡 비행을 못한 상태였다. 대령은 단순한 실수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판단하고 비행계획, 특히 지도에 주목하는데 그 지도에는 케이블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같은 축척의 이탈리아 지도에는 표시되어 었었는데 국가영상지도국은 케이블에 대한 정보가 우연히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거기다 승무원들은 얼마 전 변경된 최저고도 규정에 대해 몰랐고 4명 중에 이를 아는 건 단 1명 뿐이었다.
NCIS의 근무태만, 해병대의 훈련부족, 지도 오류, 정보전달 문제에 대한 지적이 모두 보고서에 올라갔다. 이후 비난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보고서 내용을 완화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오자 사고 한달 뒤 더롱 소장은 사고 원인이 계산착오가 아니란 결론이 나왔다고 발표한다.
지휘부에서는 승무원 4명을 희생시켜 이탈리아 기지를 살리려 시도했고, 승무원들은 본국에 송환된 뒤 군법회의에 회부되기로 결정됐다. 기소담당자는 전 해병대 조종사인 카우치 중령이었고, 혐의는 과실치사로 유죄 확정시 20년 징역을 받을 상황이었다.
감찰관은 조종사와 항법사에게 책임이 있다 판단하고 다른 2명의 승무원에게 기소를 취하하는 거래를 제안하자 조종사와 항법사가 비상착륙 후 바로 내리지 않은 것이 증언됐다. 항법사 조셉은 심문 뒤 이를 인정했고, 테이프를 카메라에서 빼고 공테잎이프로 갈아끼우느라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풍경을 보며 실컷 웃는 게 테이프에 찍혔을텐데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웃는 자기 모습이 퍼지면 안 좋은 모습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해서 테이프를 갈아끼운 뒤 애쉬비 대위와 같이 테이프를 태웠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승무원들이 규정을 준수했다면 테이프를 안 태웠을 것이라 판단하고 이 새 정보를 추가 증거로 제시했다.
3.4 군법 회의, 그리고 결과
사고 1년후, 군법회의가 시작되었다.
검찰측은 피고 측이 최저고도를 어긴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고, 변호인 측은 낮은 고도에서는 수평선이 아닌 계곡의 끝을 기준점으로 삼는데 이 기준점에 접근하면 수평선이 내려간 것처럼 보여, 하강하다가 와이어를 본 순간 자신들이 위에 있다 착각해 하강하며 벌어진 사고라 주장했다. 검찰 측에선 이에 대해 책임회피라며 비난했고, 피고 측은 해병대의 훈련부족, 정보전달 미비에 책임이 있다 주장했다.
이후 절반이 비행기 조종사인 배심원이 7시간에 걸쳐 논의한 끝에무죄를 선고했다. 과실치사혐의는 없고, 테이프를 태운 것이 증거를 없앤 셈이니 공무집행방해죄를 더해 애쉬비 대위에게 6개월 형을 내린 것 외에는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8]
이후 애쉬비 대위는 조셉 슈와이처와 함께 불명예제대 처리되었고 아비아노에는 여전히 기지가 존재하지만 해병대는 주둔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