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 제로

1 개요

Count Zero

윌리엄 깁슨의 소설로서 "스프롤 3부작" 중 두번째에 해당하는 작품. 1986년작이다.

기업들에게 고용되어 그늘속의 비밀전쟁에서 암약하는 용병인 "터너", 우연히 사이버스페이스의 여신(?)과 접촉한 후 엄청난 일에 휘말리는 십대 소년 "바비 뉴마크", 그리고 괴짜 재벌인 요제프 피렉에게 고용되어 어떤 미술품의 제작자를 추적하는 갤러리 주인 "말리 크루시코바"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세 주인공들의 시점에서 각각 독립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클라이막스에서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진다.

전편인 "뉴로맨서" 와 이어지는 이야기이면서도, 정보 암거래상인 "핀" 을 제외하면 겹치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1986년 로커스 상, 1987년 휴고상, 네뷸라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2 줄거리 요약

이 작품은 각 장마다 세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하지만 줄거리 요약을 그런 식으로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세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각각 따로 요약해 나열하였다.

2.1 터너의 이야기

첫번째 주인공인 터너는 기업의 인재가 다른 기업으로 옮겨가는 일을 돕는 헤드헌터 용병이다. 그냥 헤드헌터가 아니라 용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시대의 대기업들은 최고 인재들을 확보하거나 잡아두기 위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행위도 서슴치 않기 때문.

터너는 이번엔 신예 바이오테크 기업인 "마아스 바이오텍" 의 최고 연구자인 "크리스토퍼 미첼" 을 빼내 굴지의 IT기업인 호사카에 넘기는 일을 맡는다. 그러나 터너의 손에 떨어진 것은 크리스토퍼 미첼이 아니라 그의 딸인 십대 소녀 안젤라 미첼이었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겨를도 없이 작전구역이 누군가에게 폭격을 당해 초토화되고 만다.

터너는 안젤라만을 데리고 탈출용으로 미리 준비되어 있던 소형 전투기에 올라타 간신히 빠져나오지만, 이제 두사람은 호사카와 마아스 양쪽에게 쫓기는 몸이다. 그런데 갑자기 안젤라가 스스로를 "사이버스페이스의 부두교 신들" 이라 칭하는 어떤 자들에게 빙의되어, 섬찟한 목소리로 터너에게 지령을 내린다. 스프로울[1]의 어떤 건물로 안젤라를 데리고 가라는 것.

사실 안젤라의 두뇌 속에는 아버지인 크리스토퍼 미첼이 만든 바이오칩이 이식되어 있었다. 바이오칩[2]은 인간의 암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만든 생체 컴퓨터 소자로서, 단백질 분자 자체가 스위치 소자로 작동하여 실리콘제 칩의 성능을 아득히 상회하는 성능을 내는 물건이다. 때문에 극히 미세한 바이오칩 하나에 고성능 컴퓨터의 기능을 모두 탑재하는 것도 가능하다.[3]

그런 바이오칩이 두뇌에 박혀있는 안젤라는, 별도의 하드웨어 없이도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할 수 있었다.[4]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부두신이라는 존재들이 안젤라의 두뇌에 접속해 빙의를 한 것.

아무튼 부두신들이 시키는 대로 가보니 그곳은 어떤 나이트클럽으로, 정체모를 자의 사주를 받은 동네 양아치 군단들이 겹겹히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터너는 포위망을 뚫고 안젤라를 클럽 안의 사람들에게 데려다 주는데 성공한다. 클럽 안의 사람들은 안젤라를 "사이버스페이스의 성처녀" 라 부르며 숭배하는 이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십대 소년인 바비 뉴마크였다.

2.2 바비 뉴마크의 이야기

두번째 주인공은 십대 소년으로 엘리트 해커인 카우보이가 되고 싶은 바비 뉴마크. 경험은 전혀 없는 초짜지만 벌써 "제로 백작 (카운트 제로)" 이라는 카우보이 예명(?)까지 정해놓았다.

바비는 처음으로 해킹을 하다가 블랙 아이스[5]에게 걸려 죽을 뻔하지만, 놀랍게도 사이버스페이스 안에 거대한 여자아이(?)가 나타나서는 바비를 블랙 아이스의 주박으로부터 너무나 손쉽게 풀어준다.

바비를 도와준 것은 소문의 "사이버스페이스의 성처녀" 라고 하는데, 이 여신을 숭배하는 부두교 카우보이들이 바비에게 나타나서는 "너는 성처녀의 가호를 입었으니 우리랑 함께 하자" 며 바비를 스프로울의 어떤 건물로 데리고 간다.

이들 부두교 카우보이들은 하이티 출신으로 사이버스페이스 안에 기거한다는 "부두교의 신들" 과 거래를 하므로써 보통 카우보이들은 꿈도 못 꾸는 어려운 해킹을 척척 해내는 거물들이다. 그들이 바비를 데리고 간 건물의 한 나이트클럽, 하지만 이 나이트클럽은 곧 누군가에게 완전히 포위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부두교 카우보이들 중 한명은 백주대로상에서 로켓 공격을 당해 죽는다.

포위대의 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웬 터프가이가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포위망을 돌파해 클럽에 들어온다. 소녀는 바로 사이버스페이스의 성처녀 안젤라 미첼이고, 사내는 물론 용병 터너.

포위대를 지휘하는 배후이자 터너와 바비의 적은 다름 아닌 터너의 매니저인 콘로이. 그는 애당초 미첼 탈출작전의 총책임자였지만, 도중에 요제프 피렉이라는 대재벌에게 포섭당해 호사카와 마아스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크리스토퍼 미첼을 빼돌리려고 했다. 미첼이 호사카에게 건네지기 전에[6] 빼돌리려고, 비상시엔 터너가 미첼을 데리고 전투기로 작전지역을 탈출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을 노려 작전지역에 레일건 폭격을 가한 것도 콘로이였던 것.

그리고는 미첼 대신에[7] 딸인 안젤라의 두뇌속에 있는 바이오칩이라도 확보하겠다는 속셈으로 클럽을 포위한 것이었다.

터너의 제안에 따라 바비는 사이버스페이스에 진입, 미첼 탈출작전 도중 폭사한 카우보이 라미레즈의 파트너, 제일린 슬라이드를 찾아내어 라미레즈의 죽음이 콘로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 그러나 바비는 뜻하지 않게도 사이버스페이스의 부두신들에게 붙들려, 요제프 피렉의 전뇌공간 내의 기거처에 떨어지고 만다.[8]

부두신들은 요제프 피렉이 자신들의 신하인 부두교 카우보이를 살해했음을 알자, 바비의 몸(?)을 빌려 피렉에게 벌을 내린다. 피렉의 의식은 각종 보안프로그램으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바비에게 빙의한 부두교의 사신 "바론 사메디" 의 위력 앞에 순식간에 무력화되어 버리고, 피렉은 진정한 죽음을 맞는다.

부두신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바비는, 가까스로 제일린 슬라이드를 찾아내 터너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애당초 콘로이를 의심하고 있었던 제일린은, 곧바로 콘로이가 있는 빌딩을 로켓으로 공격해 날려버리며, 콘로이가 죽자 포위망도 머지않아 풀리고 안젤라와 바비는 부두교 카우보이들과 함께, 그리고 터너는 혼자서 각자 갈 길을 간다.

2.3 말리 크루쉬코바의 이야기

빠리의 작은 갤러리 주인인 말리는, 연인에게 속아 위작을 진품인 줄 알고 거래하려다 완전히 매장당한 신세이다. 그런 그녀에게 괴짜 재벌인 요제프 피렉이 연락을 보내, 어떤 일련의 예술작품들의 작가를 찾아내는 임무를 맡기겠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유리로 덮은 나무상자 안에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배치된 오브제들인데, 그것을 만든 이를 찾아내는 일에 착수하는 조건으로 피렉은 말리에게 거액의 급료와 그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경비를 지불하겠다는 것.

그러나 피렉은 말리와 직접 만날 수가 없는 몸이었다. 이미 오래전 불치의 암으로 육체를 잃어버린 피렉은, 수백 킬로그램의 암덩어리가 되어버린 몸을 생명유지장치 안에 보관해둔 채 정신만을 사이버스페이스 서버에 옮겨 살아가고(?) 있는 기괴한 존재였던 것. 때문에 말리는 피렉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가상현실 구현기인 "심스팀" 에 의존해야 했다.

일에 착수하기가 무섭게 말리의 전 연인 알랭이 그 작가에 대한 정보를 팔겠다며 접근한다. 그런데 말리가 알랭과 만나기로 한 곳에 가 보니 알랭은 이미 누군가에게 고문당하다 죽은 채였고, 말리는 알랭이 남긴 쪽지에 적힌 한줄의 주소만을 길잡이삼아 도망친다.

그 주소는 지구 궤도상의 우주 콜로니로, 왕년에 태시에-애쉬풀이라는 재벌가족의 소유인 스파였던 곳[9]이었는데, 지금은 버려져 궤도상에 방치된 상황. 콜로니로 향하는 상업 우주셔틀에서, 말리는 심스팀을 통해 피렉과 다시 만난다. 피렉은 말리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계획대로이며, 말리의 행선지에 사는 오브제의 작가는 피렉을 다시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에 집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버려진 콜로니에 살고 있는 이들은 우주 떠돌이 두명 뿐이었으며, 오브제의 작가는 인간이 아니라 콜로니에 남겨진 옛 인공지능이었다. 원래 뉴로맨서이자 윈터뮤트였던 이 인공지능은, 어떤 카우보이[10]의 도움을 받아 메인프레임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전뇌공간 자체의 자의식으로 거듭났었지만, 그 거대해진 자의식은 머지 않아 수많은 개체로 분열되며 통일성을 잃어버렸던 것.

그 자의식의 파편들은 지금 사이버스페이스의 부두교 신들을 자처하며 인간세상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즐기고 있지만, 원본에 해당하는 인공지능은 아직도 태시에-애쉬풀 콜로니에 남아 콜로니 내부에 떠다니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모아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소일거리삼아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11]

마아스 바이오텍의 연구자 크리스토퍼 미첼은 이들 "부두교의 신" 들에게서 얻은 지식으로 바이오칩을 만들었으며, 그것을 아는 피렉은 (미첼이 죽은 지금) 그 "부두신" 들의 원본이자 바이오칩의 원작자인 인공지능을 손에 넣으려는 계획이었다. 바이오칩을 수많은 인간들의 두뇌에 이식하고, 그 바이오칩에 피렉의 의식을 다운로드하므로써 신체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세상을 누비겠다는 것이 피렉의 바램이었던 것.

마침내 콜로니까지 말리를 쫓아온 피렉의 하수인들은 우주 떠돌이들이 걸어잠근 에어록을 부수고라도 들어올 기세인데, 때마침 바비 뉴마크의 활약으로 요제프 피렉이 죽어버려, 피렉의 하수인들은 지구로 돌아가고 말리는 자유의 몸이 된다.


마지막 장에선 세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다뤄진다. 터너는 형 루디의 농장으로 돌아가 아들도 낳고 잘 살고 있고, 말리는 갤러리를 열었으며, 안젤라 미첼은 심스팀 스타가 되어 연예계에서 대활약중, 그리고 바비 뉴마크는 안젤라의 애인이자 한사람 몫을 하는 카우보이가 되었으면서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랐던 배리타운을 그리워한다는 결말.

3 작품 해설

"카운트 제로" 는 윌리엄 깁슨의 출세작인 뉴로맨서의 속편인 작품이니만큼, 연재때부터 많은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평가는 좋은 편으로, 뉴로맨서보다 이야기 전개가 더 흥미롭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몽환적인 문장의 구사가 전편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다.[12] 요컨대 날씬한 스릴러의 형태는 갖추었으되, 전편만큼의 완결성이나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지는 않다. 전편처럼 서정적인 느낌도 부족하다.

뉴로맨서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아미타지, 즉 윌리스 코토는 한때 "기업의 인재를 다른 기업으로 빼돌려 주는 헤드헌터 용병" 일을 하던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헤드헌팅을 하는지 궁금했던 독자들은 카운트 제로에서 터너의 활약을 읽으며 그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사실 작품 초~중반에 걸쳐 묘사되는 터너의 "크리스토퍼 미첼 탈출작전" 은 이 소설 작품에서 가장 읽을만한 부분으로 평가되며, 이 부분이 워낙 뛰어난 바람에 작품 끝부분에서 모든 흑막이 밝혀지고 악인들에게 천벌이 내려지는 부분의 카타르시스가 오히려 희석되고 말았다는 평이 많다.

카운트 제로의 후편이자 스프롤 3부작의 마지막 권인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 에는 카운트 제로의 캐릭터인 바비 뉴마크와 안젤라 미첼, 그리고 뉴로맨서의 캐릭터인 3제인과 몰리가 함께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안철수가 뉴로맨서를 언론에서 언급한지 몇주만에 순식간에 번역되기도 했다. 안철수 붐을 타고 반사이익을 얻으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십년간 번역되지 않던 소설이 갑자기 번역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안철수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2016년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도 번역 출간되었다.
  1. Sprawl. 대규모로 펼쳐져 있는 도심지역을 urban sprawl 이라고 일컫는데, 윌리엄 깁슨 작품에서 스프로울이라 하면 BAMA를 지칭하는 것이다. BAMA는 작중에서 미국 보스턴에서 아틀랜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펼쳐진 초거대 도시구역을 이르는 말. 뉴로맨서, 카운트 제로,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의 세 작품의 지리적 배경이 스프로울인 관계로 이들 작품을 스프로울 삼부작이라 부르기도 한다.
  2. 작중에선 바이오소프트라고 부른다.
  3. 호사카가 미첼을 탐낸 것도 물론 이 바이오칩 때문이다.
  4. 컴퓨터 없이 생각만으로도 인터넷 검색이 된다고 상상해보라.
  5. 신경 피드백을 통해 침입자를 죽여버리는 살인 아이스(아이스는 일종의 방화벽 프로그램이다). 물론 불법이지만 당하는 쪽도 불법행위를 하다가 당하는 것이므로...
  6. 마아스 연구소에서 탈출한 것이 미첼이 아니라 그 딸인 안젤라라는 것을 몰랐으므로.
  7. 미첼은 딸을 탈출시킨 후 곧바로 자살했다.
  8. 피렉이 왜 사이버스페이스에 살고 있는지는 세번째 주인공인 말리의 이야기에 나온다.
  9. 빌라 스트레이라이트
  10. "뉴로맨서" 의 주인공인 카우보이 케이스.
  11. 콜로니에 흘러들어온 우주 떠돌이들이 그 오브제를 받아서 지구에 가져가 예술품으로 파는데, 그것이 피렉의 손에 들어간 것.
  12. 그 대신 읽기는 더 편하다. 뉴로맨서의 경우엔 도입부에서 포기하는 독자들도 꽤 되는 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