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차 세계대전 말기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상륙지점을 속이기 위해 연합군이 펼친 기만작전. 이 작전의 성공으로 독일군은 노르망디보다 북쪽의 파 드 칼레 지점과 노르웨이 해안에 방어를 집중하였고 덕분에 연합군은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을 비교적 적은 피해로 성공시켰다.
2 배경
2차대전 발발 직후 연합군과 독일의 정보력은 독일군 쪽이 약간 우세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전쟁 중반부터는 독일군 암호체계인 에니그마가 영국 암호해독 팀인 "울트라"에 의해 뚫려 연합군은 독일군 수뇌부의 의중을 상당부분 파악하고 있었고, 해독된 비밀통신을 바탕으로 영국은 자국에 침투한 독일 스파이들을 대부분 찾아내었다. 전쟁이 끝난 후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영국에 침투한 독일군 스파이는 총 50명이었는데, 영국은 이 중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잡아냈고, 한명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다고 한다. 영국은 이렇게 잡아낸 스파이 가운데 상당수를 이중간첩으로 전향시켜 독일 수뇌부에 거짓 정보를 흘리게 했다. 한편 1940년 가을 무렵 독일 공군은 영국 본토 항공전 패배의 후유증으로 항공정찰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정보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영국은 독일군의 이동을 상당부분 파악하고 있었는데, 특히 공군과 해군은 대부분의 통신이 무선으로 이루어져서 도청이 쉬웠던 관계로, 상당수 부대의 이동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연합군 해군은 이런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자신들이 암호를 해독해서 적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 아니라 정찰로 발견한 것처럼 속이기 위해 적 함정의 예상경로에 가짜 무선통신을 하는 정찰기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독일을 상대로 역으로 다양한 기만전술을 시도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시칠리 섬 상륙(허스키 작전) 작전을 속이기 위해 실시한 '다진 고기 작전'이다.런던에서 쥐약을 먹고 죽은 노숙자의 시체를 물에 빠져 죽은 연락장교의 시체인 것처럼 해변에 떠밀려가게 하여,"정어리를 얼마나 가지고 갈지 모릅니다"라는 마치 암호문처럼 위장한 거짓 엽서를 가방에 넣어두어 연합군의 공격목표가 시칠리 섬이 아닌 그리스와 사르데냐 섬[1]으로 착각하도록 했다. [2] 기만전술의 성공으로 재미를 본 연합군은 프랑스 본토 상륙에서도 비슷한 작전으로 상륙 위치를 속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3 북 포티튜드 작전
포티튜드 작전은 상륙위치를 크게 두 개로 속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노르웨이 해안 상륙작전이었다. 노르웨이 해안에 대규모의 연합군 상륙을 가장하기 위해 영국군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군단 하나를 서류상으로 창설하고 이름을 4군단이라고 붙였다. 이 가상의 4군단은 마치 스키부대가 포함된 것처럼 속이기 위해 25만개의 스키를 주문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과 협상하여 스웨덴 영토를 공중정찰할 권리와 비상착륙시 재급유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받아내거나, 독일에 볼 베어링 수출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스웨덴이 연합군에 합류하여 북쪽으로부터 독일을 침공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외교적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이 성공적이었는가는 역사가들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4 남 포티튜드 작전
연합군 주력부대가 프랑스 어딘가에 상륙할 것이라는 것은 독일 측에서도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포티튜드 작전의 핵심은 프랑스 본토의 상륙지점을 속이는 것이었다. 연합군이 흘린 가짜 정보는 실제 상륙지점인 노르망디에서 한참 북쪽으로 떨어진 파 드 칼레로 상륙한다는 것이었다. 파 드 칼레는 실제로 노르망디보다 영국 본토에서 좀 더 가깝고, 방어하기에도 어려운 지형이었으므로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거짓말이란 더 그럴듯할수록 속기 쉬운 법...
또한 연합군은 이미 디에프 상륙작전에서 얻은 교훈으로 잘 정비된 항구도시에 상륙한다는 것은 이미 망했어요의 지름길임을 안 이상 파 드 칼레에는 상륙하려 생각조차 않았다. 거기에 독일군은 디에프 상륙작전에서 노획한 쥬빌리에 작전계획서[3]에 따라 연합군의 상륙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연합군은 가짜 상륙부대인 제1 군집단을 서류상으로 창설하여 독일에서도 유명했던 조지 S. 패튼 장군의 휘하로 소속시켰다. 그리고 파 드 칼레와 가장 가까운 영국 항구인 도버에 가짜 지휘본부를 짓고 나무로 된 상륙정, 고무풍선으로 만든 가짜 탱크[4] 등을 만든 다음 패튼 장군이 직접 시찰했다. 그리고 1개 군 규모의 작전계획이 정말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주변지역에 엄청나게 많은 무선 소음을 뿌렸다. (독일군은 이 소음이 암호인 줄 알고 해독을 시도하기도 했다.) 파 드 칼레의 레이더 기지는 집중폭격을 맞았다.
마지막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도버에 있던 낡은 배를 총동원하고, 그 뒤에 알류미늄이나 기타 금속제 외피를 가진 거대한 풍선을 하나씩 달아놓아서 해협 건너편에 있던 독일군의 레이더에 확실히 잡이도록 하여 파 드 칼레쪽이 진짜 상륙작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5 결과
이 기만작전이 어찌나 성공적이었는지 연합군이 상륙한 지 며칠 뒤까지도 히틀러는 노르망디의 몽고메리 장군 쪽이 양동작전이고 패튼 장군의 본대는 파 드 칼레로 상륙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심지어 상륙 다음날 샤를 드 골 장군이 라디오 방송으로 "노르망디가 진짜임"이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그 결과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확실한 교두보를 차지하였고, 이를 막기 위해 독일군이 축차적으로 병력을 파견했으나, 그 병력들의 상당수가 이동 중 손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도 롬멜같은 유능한 장군이 있어서 남은 병력을 가지고 간신히 연합군을 노르망디에 가두었으나...
이때까지 히틀러가 아직 주공이 파 드 칼레라고 믿고 있어서 그 때까지 파 드 칼레의 수비군은 이동하지 않았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노르망디의 양동이 너무 크게 성공해서 주공 계획이 취소되었다"라고 판단한 히틀러가 그제서야 수비군도 노르망디에 보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목숨을 걸고 간신히 연합군을 막던 독일군은 패튼 장군의 기갑부대에 돌파구를 내주고 말았고, 팔레즈 포켓에 갇힌 채 집중사격을 받아서 사실상 서부전선의 독일군 주력이 붕괴되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이후 연합군은 신나게 독일 국경과 파리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