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3용사

爆弾三勇士の歌
1932년 나온 일본군 육군의 군가로 이 노래의 배경은 1932년 2월 22일. 한창 1차상해사변이 진행중일 때이다.
묘행진은 상하이 교외에 있는 지역으로 여기에 중국군이 진지를 구축하고 철조망을 쳐 놓아서 감히 돌격할 수가 없었다,
이에 육군 독립공병 제 18대대의 세 일등병 에시타 타케지 江下武二, 키타가와 스스무 北川丞, 사쿠에 이노스케 作江伊之助 셋이 폭탄통을 들고 달려가 강행돌파, 폭사하였다.
이 이야기는 미담으로서 일본 전역에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각 신문의 보도를 통하여 용사로 떠받들어지고 2계급 특진으로 육군 오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견도 있어, 충분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나 폭탄통의 기술문제로 인해 일찍 폭발하여 폭사했다는 의견도 있다.

여튼, 당시에는 언론통제로 인해 정확한 실상이 알려질 리 없었기에 동상도 세워졌으며 영화도 만들어졌고 육군 최초로 조의금이 모였다.

파일:/20150419 215/kchwoo9 1429401364630EMjpQ JPEG/Bronze Statue of the Three Human Bullets.jpg

폭탄삼용사의 동상.

또한, 폭탄삼용사는 순식간에 국민영웅이 되어 온갖 만화, 이야기, 광고 등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파일:/20150419_159/kchwoo9_1429401568087eC5Q2_PNG/%EB%BF%DF%B2%E9%B8%DE%CD%CD%B1.png]]

폭탄삼용사가 등장한 맥주광고 특고가 끌고가지 않았을까

이 군가도 역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는데 오사카매일신문과 동경일일신문의 공모로 만들어졌다.

작사는 요사노 텟칸 与謝野寛 작곡은 츠지 쥰지 辻順治


廟行鎮(びょうこうちん)の敵の陣
我の友隊(ゆうたい)すでに攻む
折から凍る如月(きさらぎ)の
二十二日の午前五時

묘행진의 적진
우리 부대는 이미 공격중
때는 얼어붙는 2월의
22일 오전 5시


命令下る正面に
開け歩兵の突撃路
待ちかねたりと工兵の
誰か後(おくれ)をとるべきや

내려온 명령은 정면에
열어라 보병의 돌파로
기다렸다는듯 공병의
누가 뒤쳐지겠냐는 (외침)


中にも進む一組の
江下 北川 作江たち
凛たる心かねてより
思うことこそ一つなれ

그 중 앞서 나아가는 한 조
에시타, 키타가와, 사쿠에
늠름한 마음 처음부터
생각하는 바 하나 되었다


我等が上に戴(いただく)くは
天皇陛下の大御稜威
後に負うは国民の
意志に代われる重き任(にん)

우리들이 하사받은 것은
천황폐하의 대위광
뒤에 짊어진 것은 국민들의
의지를 대신한 무서운 임무


いざ此の時ぞ堂々と
父祖の歴史に鍛えたる
鉄より剛(かた)き「忠勇」の
日本男子を顕(あらわ)すは

자 이 때야말로 당당히
조상의 역사에 단련된
철보다 단단한 '충용'의
일본 남아의 나타내야 한다


大地を蹴りて走り行く
顔に決死の微笑あり
他の戦友に遺(のこ)せるも
軽(かろ)く「さらば」と唯一語

대지를 박차며 달려나가는
얼굴에 결사의 미소 띄고
다른 전우들에게 남기는 것도
가벼운 "안녕" 오직 한마디


時なきままに点火して
抱(いだ)き合いたる破壊筒(はかいとう)
鉄条網に到り着き
我が身もろとも前に投ぐ

시간이 부족한 채로 점화하고
함께 안아든 파괴통
철조망에 다다라
내 몸과 함께 앞으로 던진다


轟然おこる爆音に
やがて開ける突撃路
今わが隊は荒海の
潮(うしお)の如く踊り入る

요란히 울리는 폭음에
드디어 열리는 돌파로
지금 우리 부대는 거친 바다의
파도와 같이 뛰어들어간다


ああ江南の梅ならで
裂けて散る身を花と成し
仁義の軍に捧げたる
国の精華の三勇士

아아 강남의 매실이라면
찢어지는 몸을 꽃으로 이루어
인의의 군에 바치는
나라의 정수 삼용사


忠魂清き香を伝え
長く天下を励ましむ
壮烈無比の三勇士
光る名誉の三勇士

충혼 맑은 향기를 전하며
길이 천하를 격려하는
장렬 비견될 데 없는 삼용사
빛나는 명예의 삼용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