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타우

浦桃

생몰년도 미상

몽골 제국의 인물.

1219년에 고려, 몽골 제국, 동진의 연합군이 거란의 잔당이 점령하고 있던 강동성을 공격할 때 참전했으며, 거란의 잔당이 항복하자 고려, 몽골 제국이 형제국의 관계를 맺기로 하면서 다른 9명과 함께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조서를 보내 화친을 청했다.

고려에서 박시윤을 보내 영접하자 푸타우는 객관 박까지 와서 그대로 머물기만 하면서 국왕이 영접해야 한다고 하다가 고종이 역관을 시켜 여러 번 독촉하자 객관으로 들어갔으며, 고종이 사신을 접견하자 다른 이들과 함께 털옷, 털모자 차림을 하면서 활, 화살을 차고 가슴 속에서 편지를 꺼내 고종의 손을 잡고 전달하려 했다가 고종이 당황했다.

이에 최선단이 사신들은 물러가게 했고 푸타우는 다른 이들과 함께 고려의 관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와서 인사를 올리면서 읍만 했으며, 돌아갈 때 각종 선물을 받았다.

1221년 8월에는 저구유 등이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이 때 차라의 편지와 함께 푸타우의 편지가 전달되었고 두 편지는 모두 각종 물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1231년에 살리타이를 원수로 몽골군이 고려를 공격햇는데, 몽골군이 평주로부터 출발해 개경의 선의문 밖에서 각기 원수들이 진을 칠 때 푸타우는 금교에서 진을 쳤다.

원사에는 포리대야(浦里帒也), 고려사에는 포리대완(蒲里帒完), 포흑대(蒲黑帶)로도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