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불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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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3.26~2016.1.5)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1 작곡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수제자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 였던 메시앙이 인정한 천재. 메시앙 외에도 르네 라이보비치 에게 대위법을 배웠다.
메시앙의 수제자였지만 음악관이 달라 추후 갈라지게 된다.

그의 사조는 '총렬주의'라고 표현되는데 음렬주의의 진화버전으로 음 뿐만 아니라 박자나 셈여림 등등을 모두 하나의 규칙적인 배열로 만들어 버려서 수학적으로 나열하는 식이다.

난해하기로는 현대음악 Top 5안에 거뜬히 들 정도이고 펜데레츠키 등과 비교하면 대중적인 인기도 떨어진다. 그의 작품을 듣는사람은 열이면 아홉은 그냥 작품분석과 공부를 위해서라고 보면된다.

2 경력

작품발표를 지속 하면서 작곡가를 함과 동시에 파리의 연극단[1]을 위해 작곡 및 지휘를 하였고 소규모 오페라단에서 지휘 경력을 쌓았다. 본격적인 지휘자 데뷔는 1958년 준 메이저 악단이라 할 수 있는 바덴바덴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에서 하였다.

이후 여러 악단에서 객원 지휘를 하며 명성을 얻은 불레즈는 196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 1967, 1968, 1970년에도 초청을 받았으며 실험적인 해석과 무대로 큰 호평을 받았다. 다만, 전통적인 바그너의 해석과는 지극히 동떨어진 스타일 탓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19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00주년을 맞아 파르지팔을 연주했다. 보수적인 관객들이 늘어 1970년에 비해 더 큰 호평을 받진 못했으나, 불레즈의 신선한 해석은 당시 바그네리안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고 추후 2004년에도 다시 초청을 받게 된다.

1970년 메이저 포스트라 할 수 있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상임이 되었고 1971년에는 BBC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뉴욕 필하모닉 시절 콘서트에서 현대음악을 많이 다뤄 후원자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고, 이 덕분에 후원자들의 후원이 줄어들었다. 다만 지적인 젊은이들과 히피들에겐 큰 인기를 끌었으며, 가히 클래식음악 계의 '우드스톡 페스티벌' 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현대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관객들의 평은 좋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 정부로부터 음향·음악 연구소(IRCAM)의 소장직을 제안받으면서 뉴욕 필에서 사임했다.[2] 한편 BBC 심포니에서는 방송교향악단치고는 보수적이었던 BBC 심포니의 레퍼토리를 크게 늘리며, BBC 심포니의 리즈시절을 열었다. 당시 BBC 심포니 연주중에 나쁜 연주를 찾기 힘들며, 악단의 음악적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뉴욕필 사임 이후 그는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퐁피두센터 내 IRCAM(현대음악/음향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으며 동시에 현대음악 연주를 위한 단체 Ensemble intercontemporain(앙상블 앵테르꽁땅뽀랭)을 창설, 수많은 녹음을 남겼다.

베를린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의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음반 및 공연을 자주 했다.

3 지휘

지휘봉을 쓰지않고 손으로 지휘한다.

지휘내내 표정변화가 거의없으며 절대 웃거나 미소짓거나 흥분하거나 하는 감정을 나타내지않는다. 또한 연주자들과의 아이컨택도 거의없고 시종일관 악보만 쳐다보고있다. 이게 뭐 잘못됐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확실히 그의 특징중 하나이다.

다만 암보를 한 곡이라면 그냥 편하게 연주자들을 보면서 지휘한다.

4 레퍼토리

현대음악 작곡가답게, 주로 근현대 음악에 편중되어 있다. 음렬주의-총렬주의 음악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쇤베르크와 그 제자인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등 신빈악파의 중요한 작품들은 대부분 다루었으며, 베베른을 계승한 메시앙과 불레즈 자신이나 슈톡하우젠의 작품도 주요 레퍼토리. 다만 메시앙이 총렬주의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작곡한 곡들은 다루지 않는다. 그밖에 리게티, 노노, 베리오, 바레즈 등의 작품이 있다.
다만 불레즈의 레퍼토리에서 보다 대중적인 것은 역시 바그너와 말러 등 후기낭만주의 레퍼토리와 드뷔시, 라벨 등의 근대 프랑스 음악, 스트라빈스키와 바르톡의 작품이다. 물론 불레즈답게 여느 해석과는 궤를 달리하며 매우 분석적이고 이지적인 것이 특징.
이 사람 치고는 특이하게도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반도 있는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런 고전-낭만 레퍼토리를 지휘하는 건 취미라고.

5 해석

그의 해석을 요약해보자면 '감정절제'와 '정교함' 정도로 볼 수 있다. 어떤 곡이던 감정을 싹다 빼버리고 무미건조하게 만들어버리지만 그 대신에 엄청난 구조적 치밀함을 선보인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욕할사람은 욕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한다. 확실한건 지휘자 중에서도 제일 특징이 도드라지는 편이라는 것.

6 여담

최소 3개국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여자 비서와 동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이로 알고있는데?)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지성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 지휘자 로서는 톱클래스, 작가로서도 어느정도 명성이 있다. 젊은 시절엔 연극배우도 했었으나 배우보다는 연출을 더 즐겨했다고 한다.(검증 필요) 아마추어 수학자이다.

첼리비다케 사후 최고의 독설가 중 하나 #

지휘자로선 워낙 확고한 스타일이 있어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건강이 나빠져 음악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2016년 1월 5일 90세의 나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 오페라가 아니다
  2. 이후 뉴욕 필하모닉은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 로린 마젤 등의 지휘자를 거쳐 하락세를 거듭하고, 한때 세계 톱3 오케스트라라는 명성도 잃어 현재에도 여전히 과거에 비교하면 평가가 썩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