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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은 피타고라스 학파를 이루었는데, 아주 엄격하고 독특한 계율을 가졌으며 피타고라스를 신격화하고 있는 종교이나 학파였다.(…) 피타고라스가 죽은 후에도 피타고라스 학파는 유지되었고, 기원전 1세기에서 3세기에는 신피타고라스 학파가 대두되었다. 신플라톤주의자들도 이들의 영향을 받는 등 중세와 르네상스까지 영향을 끼친다.
이들은 여러 가지 계율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이들과 한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성품이 좋아야 했다.[1] 또한 이들은 친구의 것은 모두의 것이라는 계율을 가지고 있었다. 윤회설과 더불어 인과응보에 관해서도 믿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약간 채식주의의 느낌도 보이지만, 이슬람교나 힌두교처럼 특정한 고기만 먹지 못한 것으로 보곤 한다. 또한 묵언이나 비밀 엄수의 규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 독특한 것은 콩을 먹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 종교 계율이 이유는 삼각수, 사각수 등을 나타내기 위해 점으로 쓰던 것이 콩이라서, 투표에 콩을 썼기 때문에, 벌어진 콩의 모양이 검열삭제를 닮아서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이 콩이 지중해 연안에서 고대부터 많이 재배되어 빵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던 잠두콩(흔히 소라마메로 많이 알려진)인데, 피타고라스가 특히 이 잠두콩을 금기시했다는 점에서 그가 G6PD 결핍증을 앓았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또한 잠두를 먹고 소화시키는 과정이 영혼의 바람을 신체를 매개로 해 빠져나가도록 한다는 이야기가 고대 로마 시대의 작가 디오제네스 라에르티우스에 의해 쓰여지기도 했으므로, 그 당시 지중해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건 잠두의 섭취를 금기시했다는 관측도 존재하긴 한다.
다만 이러한 계율 중에는 언뜻 보면 독특하다 못해 괴랄해보이는 것도 있지만, 잠언 형식으로 전해지는 것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불을 쑤시지 말라'는 계율의 경우에는 불 같이 화난 사람을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가, '집 밖에서 뒤돌아보지 말라'는 과거의 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는 것.
심지어 피타고라스는 학파의 이름이자 학파 내에서 숭상하는 신격화된 이상적인 허구의 존재이고, 학파 구성원이 무언가를 발표할 때 이 이름을 내세워 발표한것이 오해되어 실제 인물로 전해지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후설하지만 피타고라스 학파 자체가 종교성이 있다고 이를 사이비라고 도매금하는 것은 무식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력도 영향력일 뿐더러, 이들은 학문적인 경향도 동시에 가지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초기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두 계파 가운데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한 쪽 계파는 피타고라스에게 찾아가면 피타고라스가 그냥 몇 마디 말만 하고, 다른 한 쪽 계파는 피타고라스에게 찾아가면 서로 오래동안 말을 나눴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는 종교적으로 그냥 말하면 믿는 사람들과,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었음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이비, 혹은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피타고라스 주의자들이라고 자처했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냥 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되지만.
피타고라스 학파는 정화와 불멸이라는 신비적인 문제와 명백히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이 수학과 음악에 집중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음악의 화음과 인간의 내적 생활의 조화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음악 분야에서 진정으로 발견한 것은 마디 사이의 음정이 정수로 표현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악기의 현의 길이가 그것들이 내는 음들의 실제 음정과 비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 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의 한 줄을 잡아 당길 때 일정한 음을 내던 것이 그 줄의 길이를 절반으로 하면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낸다. 이때 비례는 2:1이 된다. 다른 음정들도 모두 정수비로 유사하게 표현 될 수 있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파에 있어서 음악이란 만물에는 수들이 충만해 있다는 사실의 결정적인 실례였다. 이러한 수와 현실 세상과의 상호 관계는 우주 내의 구조와 질서의 원리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 했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만족스러운 것 이었다. 사실 상당히 선구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관점인데 이들처럼 순수 수학으로서 우주적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는 생각과 작업은 현재의 이론 물리학계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가 가지는 서양 철학사의 의미를 찾자면 '세상의 근원이 수다' 라고 주장하여, '신은 수학적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것이다. 그리고 '신이 수학적으로 창조한 세상'을 탐구하는 학문인 자연철학은 근대에 과학으로 발전하였으니 그 의미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 관점은 역시 근대나 현대의 과학 발전에 대한 기여분을 찾으려고 후세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다. 상술됐듯이 피타고라스 학파는 혼의 정화와 불멸이라는 목적, 이를 통해 바람직한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노력, 그리고 이 시도의 근거로 제시된 수학적인 우주관은 음악에 대한 예증 등으로 그 근저에 수학적으로 잘 건설된 우주라는 아름다움을 깔고 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상은 플라톤이 남부 이탈리아에 머물무렵 그의 사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줬으며, 중세철학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이들의 사상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소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사상에 대해 많은 비평을 한 만큼 서구 철학에 그 영향이 지대하다. 또 후기 피타고라스 학파의 인물들이 이런저런 과장이나 미화를 많이 하는 바람에, 신뢰도의 문제에서[2] 그의 의견은 상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평이 피타고라스 학파의 주의주장 그대로인 것처럼 서구에는 오래 전해져 내려왔는데, 그것에는 의구성을 가질 만하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학파는 사물의 근본 원리는 숫자이며, 숫자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물질적인, 어떤 실체적인 것으로서의 원리이며 사물은 수로 구성된다. 또한 짝수는 한정되지 않은 것이고 홀수는 한정된 것이다. 그런데 이건 필롤라오스의 의견과는 사뭇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필롤라오스가 아닌 다른 피타고라스주의자를 상정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필롤라오스는 그 시대 피타고라스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한정되지 않고 한정된 것을 논하는 것은 필롤라오스의 학설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필롤라오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대로 해석하거나 자기 이해에 기반해서 얘기했다고 보는 편이 가능성이 높다.
이게 어느 부분이 상충되느냐면, 필롤라오스에 따르면 사물의 근본 원리는 한정되지 않은 것, 한정하는 것, 그리고 조화이다. 이중에 한정되지 않은 것은 다른 고대 희랍철학자들처럼 흙이나 불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근본 원리가 수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다. 그리고, 숫자가 어떤 물질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필롤라오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것 흙, 불, 물 같은 것들은 한정되지 않은 것들이다. 뭐 숫자 역시 물질적인 것이라고 필롤라오스가 생각했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피타고라스 주의자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물이 수로 구성되며 사물이 나오는 근원이라는 것은 좀 무리수에 가깝다.[3] 왜냐면 필롤라오스에게 있어서 물질은 한정되지 않은 것을 수라는 것으로 한정시켜 재단하는 것이니까. 짝수 홀수의 경우는, 필롤라오스에게 있어서 수 자체가 그냥 한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왜냐면 필롤라오스는 인간이 한정되지 않은 것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숫자를 통해서 한정되는 까닭에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숫자는 그냥 한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무튼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는 이러한 오류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