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


Pythagoras (BC 570 ~ BC 490)

1 개요

고대 그리스철학자의 수학자 버전. 그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종의 교주로 당대에 종교적 · 도덕적 ·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수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후술.


2 출생 및 행적

소아시아 서안 이오니아의 사모스 섬 출신으로, 영향력에 비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후대 신피타고라스 학파들에 의해서 이런저런 과장이나 미화가 들어가기도 한다. 이는 신피타고라스 학파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도 보이곤 한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가 한 날 한 시에 두 곳에서 나타났다는 증언을 전해주기도 한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것은 틀림없다.

피타고라스는 이집트로 가서 학문을 배웠으며, 돌아온 뒤 그리스의 종교의식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등 사람들에게 평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기원전 530년경 피타고라스는 폴뤼크라테스의 폭정에 대한 불만으로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에 도착한 피타고라스는 그의 높은 학식을 바탕으로 크로톤 사람들에게 여러 조언을 하고, 그들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인도하였다. 이후 그를 중심으로 피타고라스 학파가 형성되었고, 주변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당시 크로톤의 명망가였던 퀼론은 피타고라스적 삶에 참여하는 것에 열성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성품이 거칠고, 요란하고 전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피타고라스는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거부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퀼론은 그의 추종자들을 모아 피타고라스주의자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이 때문에 피타고라스는 메타폰티온으로 떠나 기원전 490년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3 사상

흔히 수학자이자 합리적 우주론자로 이해되곤하나 아쉽게도 그를 뒷받침할만한 신빙성있는 자료들[1]이 없다는 것이 흠. 우선 신빙성있는 초기 자료들을 볼 때 확실한 것은 그가 혼의 전이설을 주장한 사람이며, 피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을 만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온은 피타고라스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며 사후에 혼의 삶이 있다라고 주장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피타고라스는 단순히 혼의 삶이 있다는 것에 멈추지 않고 사람의 혼은 불사적이며 다른 동물에게 옮겨갈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모든 동물은 동족관계에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혼의 전이는 주기적으로 일어난다라고도 피타고라스는 보았다.[2]

한편 플라톤은 피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적 삶의 방식을 만든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삶의 방식은 피타고라스의 공동체에서 은밀하게 공유되었으며, 아무나 공동체에 참여할 수 없었다. 유스티누스의 글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300명의 젊은이들이 음모자들의 비밀스러운 집회를 갖기라도 하듯, 다른 이들과는 떨어져 살았으며 크로톤을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었다고 한다. 공동체 내에서의 규율에 대해서는 밑에서 서술.

피타고라스는 수학자로서 수학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알아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있으나,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단정짓기 어렵다. 수와 관련된 그의 글 중 초기 자료에 해당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단편으로 여겨지는 '피타고라스적 삶에 대하여' 뿐인데, 여기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 기록은 피타고라스의 후기자료 중 하나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저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언급된 아폴로도로스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이 직각을 둘러싼 변들의 제곱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100마리의 황소를 제물로 바쳤다라고 한다. 여기서 '발견했다'를 '증명했다'라고 보기 어렵다. 초기자료에서 이에 대핸 근거가 될 만한 것이 없으며, 수학의 증명방법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였기 때문. '발견했다'를 '증명없이 최초로 알아냈다'라고 보기도 어렵다. 피타고라스 이전의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람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되지 않은 상태이나 알고 있었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피타고라스를 수학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간단히 말하자면 피타고라스는 위대한 '수학자'라고는 할수 없다는 소리다. 흔히 사람들[3]에게 아는 수학자의 이름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피타고라스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만큼 사람들이 '피라고라스의 정리'부터 공부를 안했다는 사실을 알수있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의 위대한 수학자는 유클리드 라고 할수있다. 유클리드는 현대 수학의 기초를 닦을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니까.

참고로 당시 그리스에서는 모든 수는 분수로 표현 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이 피타고라스 정리는 그 이론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무리수의 존재를 알려주게 된다. 이 일로 인해 제자를 죽였다는 말도 있다.[4]


4 피타고라스 학파

항목 참조.


5 피타고라스의 정리


항목 참조.
  1. 주로 신피타고라스주의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들이 쓴 자료들
  2. 피타고라스는 한 개가 개패듯이 처맞고 있는 것을 보고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니까 내 친구였던 사람의 혼이 개로 태어난 것이니 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화는 상당히 유명한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3. 특히 한국 사람들
  4. 제자의 이름은 히파소스로, 무리수, 루트를 발견했기에 피타고라스에의해 수장당했다고 한다. 혹은 그 존재를 쉬쉬하던 학파 사람들에게 누설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난파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제명까지 못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