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센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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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총리
32대33대34대
히로타 고키하야시 센주로고노에 후미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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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銑十郞 1876.02.23~1943.02.04

일본의 33대 총리. 일명 먹튀 내각의 수장. 육군대장으로 조선에서 조선군 사령관으로 있던 사람인데, 육군대신으로 임명되어 통제파의 지지를 받으며 황도파의 거두였던 교육총감 마사키 진자부로를 잘라버림으로서 궁극적으로는 2.26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

가나자와 시에서 태어난 하야시는 1894년 7월에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학교를 중퇴하고 사관후보생으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제 8기로 졸업한 후 1903년에 육군대학 제 17기로 졸업했다. 1905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에 참여하여 뤼순 공략전에 참가한 하야시는 이후 육군대학 교장, 근위사단장, 조선군 사령관을 거쳐 육군대신으로 일하다가 1937년에 수상이 되었다.

만주사변 당시 조선군 수비대를 독단적으로 만주에 파견했고 이로 인해 센쥬로에게는 "월경장군"이란 별명이 늘 따라 다녔다 하야시 센쥬로는 위에 사진에서 보이듯이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성격은 좋아서 담배와 당구를 즐겼지만 술을 심지어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수상일 당시 내각은 여러가지 악평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하야시는 평소 자신의 주변에 모인 강경파의 말만 들었기 때문에 군부 혁신파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원래부터 총리감으로 거론되던 양반은 아니었고, 또 나이도 있어 본인은 별로 총리직을 내켜하지 않았었는데, 당시 총리로 임명될 예정이었던 전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가 덴노 일가와 원로들에게 휘둘려 다닐 것을 염려한 육군의 반대 우가키가 저항하자, 헌병감이 하는 소리가 "그러면 님 내각에서 일할 육군대신은 없음 ㅋ" 로 조각을 포기하고, 망명 높은귀족들도 잇달아 조각을 포기함으로서 육군에서 마지 못해 추천한 하야시를 총리 자리에 앉혀 버린 것이었다. 이뭐병. 센쥬로가 총리가 되자이시하라 간지는 "하야시 대장이 총리라면 고양이도, 호랑이도 될 수 있다.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하야시 센쥬로는 평소에 말이 부족했고 결정을 내리는데 우유부단한 성격이였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일이 많았으며, 하야시는 군부의 일원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부정하고 일당 독재를 주장하는 고노에 후미마로의 사상에 동조했다. 하야시의 내각은 여러 자리를 겸임하는 장관들이 많았기 때문에 "2인 3각 내각"이란 별명도 듣기도 했다. 하야시가 임기 중에 한 일이라곤 전 내각이었던 히로타 내각에서 넘어온 현안 문제들을 싹 날치기 처리하더니 의회를 해산시키고 친군 세력을 규합하여 총선을 실시한 것밖에 없다. 사회주의계 정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친군파 정당들이 선거에서 대패하지 하야시 총리는 군인답게 다시 재해산을 추진하려다가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되자 바로 사퇴. 이래서 먹튀 내각의 먹튀 수상이라 불렸다. 그렇게 하야시는 취임 5개월만에 총리에서 물러났고 이후 대일본흥아동맹(大日本興亞同盟)의 총재로 일한 하야시는 1943년에 뇌출혈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