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후

韓昭侯
(? ~ 기원전 333년)

전국시대 한나라의 제6대 군주. 재위 기간은 기원전 362년 ~ 333년.

이름은 무(武). 기원전 353년에 위나라가 한단을 포위했고 신불해를 만나자 조나라, 위나라 중에 어느 나라와 동맹맺는 것이 좋냐고 물었는데, 신불해가 심사숙고해서 말하기로 하고 신불해가 조탁, 한조에게 진언하게 해서 신불해가 한소후가 좋아하는 대목을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한소후가 좋아하는 말만 골라 진언하자 한소후는 크게 기뻐했다.

기원전 351년에는 신불해를 재상에 임명했고 신불해가 자신의 종형을 출사시키려 하자 이를 거절했으며, 신불해가 원망하자 신불해가 자신에게 공적의 대소에 따라 상을 차등있게 내리라고 말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신불해가 사죄했고 기원전 348년에 직접 진(秦)으로 갔다.

기원전 334년에 가뭄이 들었는데 높은 문을 만들었고 이 때 굴의구가 이 문을 나서지 못한다고 예언하면서 가뭄 때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사치를 하는 것을 비판했다. 기원전 333년에 굴의구의 예언대로 높은 문이 완성되었지만 소후는 사망해 그 문을 나서지 못했다.

기원전 333년에 소진이 조나라를 위해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합종으로 유세하자 한소후는 진나라를 섬기지 않기로 했다는데, 소진의 활동 시기가 기원전 310년 이후로 추정되는 것으로 볼 때 소진이 외교한 군주는 한소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화

시종에게 명령해 헌 바지 하나를 잘 보관하게 했는데, 그러자 시종이 군주는 어진 사람이 아니라면서 어째서 이를 좌우에 주지 않고 보관하냐고 묻는다. 한소후는 현명한 주인은 찡그리거나 웃는 것도 아낀다면서 주인이 함부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웃으면 안되듯이 신하에게 옷을 내리는 일도 함부로 삼가는 것이며, 공을 세운 신하에게 주려고 하는 것인데 아직 그런 신하가 없어서 맡아둔다고 했다.

또 한소후가 술에 취해 잠든 일이 있었는데, 전관(임금의 관을 담당하는 관리)이 감기걸릴 것을 우려해 옷을 덮어주자 잠이 깬 한소후는 기뻐하면서 누가 옷을 덮어주었냐고 물었다. 좌우에서 전관이라고 하자 한소후는 전의(옷을 담당하는 관리), 전관을 불러 전의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것, 전관은 자기가 맡은 직분에 벗어나는 일을 한 것을 이유로 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