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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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永中 1947.02.24~

일본 재계의 픽서(브로커)라 불려지고 있는 재일교포.
이 대표적인 사건으로 국제훼리 설립에도 5공 비리 의혹,日언론, 재일동포 ‘억지 話題’ 만들기가 있다. 가장 최근(이라고 해도 1997년)에는 재일동포 사업가 허영중 실종 미스터리라는 기사가 떴다. 한국 언론의 마지막 기사는 1999년 체포.

일본의 장기말이라는 설도 있다. 폭력조직 대부인가, 누명쓴 실업가인가

1 생애

오사카출신으로 니카츠의 재일 한국인 집단거주지에서 살았던 그는 65년에 오사카 부립대학 입학에 실패해서 오사카 공업대학에 입학뒤 유도부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마작파칭코에 인생을 탕진해서, 3년에 중퇴했다. 그리고 부동산 광고업자의 비서 겸 운전기사로 경영에 대해 배웠다. 이 시절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19세부터 조직을 만들었다고 한다.흠좀무

2 브로커(픽서)

부락 해방 동맹의 간부와 함께 활동했다. 벤자민 풀포드의 '야쿠자 리섹션'에 의하면, 허영중은 재일 한국인이지만 그가 자라난 니카츠는 부라쿠민이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는 그걸 통해 조직폭력계 세계와 인연을 맺고 출세한다. 1984년 일본 레이스주 사재기 사건으로 주목받고,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과도 교우관계를 가져 한국 정계에 인연을 가진다. 픽서는 나쁜 일을 알선해주고, 중개해주는 일을 뜻한다. 해방 이후의 역대 한국정부들은 양원석(야나기가와 지로)이나 강외수(다카야마 도쿠타로) 등 일본의 재일교포 야쿠자들과 인연을 맺고 훈장도 주었다.

3 이토만 사건

일본의 전후 최대 규모의 경제 부정 경리사건인 이토만 사건을 일으켰다.관련 동영상 당연히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6억엔의 보석금을 지불하는 대가로 풀려나자마자 도주해 버렸다. 이토만 본사로부터 360억엔, 전체에서는 3천억엔(!)의 자금이 스미모토 은행으로부터 이토만을 개입시켜 폭력단 등 암흑세계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토만의 경영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쓴 신쵸사나 일본 경제신문사에 매스컴 공작을 위해 자금을 유출하기도 했다.

4 기타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다. 그외에도 재일동포 단체나 부라쿠민 권익신장 단체의 회장으로도 있었다.# 오사카에 한국민족사료관도 세웠었다.#

2012년 12월 1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등이 체결한 국제조약에 의해 본인의 희망에 따라 한국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수형자는 이송처에서 남은 형기를 채운다.

검은 사기에서 주인공 쿠로사키에게 정보를 주는 늙은이 카츠라기 토시오의 모델로 추정된다. 애인(정부)이 놀랍게도 3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2013년 9월 30일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복역중 가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