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폰 몰트케

1 개요

9939-004-FE4A6BB6.jpg

Helmuth Karl Bernhard von Moltke
( 1800.10.26 ~ 1891.4.24)

2 소개

독일이 나폴레옹에게 당했던 치욕을 그대로 되갚아준, 근현대 독일군 명장계보의 시작을 끊은 인물

19세기 프로이센, 독일 제2제국의 군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더불어 독일 통일의 1등공신으로 추앙받는 인물.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군대에서 채택하고 있는 근대적인 참모본부 제도를 정립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훗날 그의 뒤를 이어 총참모장이 되는 조카와 구분하기 위해, '대(大)몰트케'라고도 불린다.

3 생애

1800년 북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일찍 집을 나와 18세에 덴마크군의 소위로 임관하였지만. 2년 후 군적을 바꿔 다시 프러시아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833년부터는 프로이센군 참모부에 근무하였고, 1835년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고문 자격으로 아르메니아에 파견되어 오스만 제국의 장교가 되었으며, 1839년에는 이집트군과 전투를 치뤘다.

1857년 프로이센군의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그는 1858년부터 1859년까지 참모부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였다. 그는 산업화 시대에 나타난 철도와 통신을 주목하여 이 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과거 나폴레옹의 지속적인 공격 개념또한 첨가하였다. 특히 그는 적을 직접치는 정면공격보다는 적군을 포위한 후 궁지에 몰린 적군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먼저 정면공격을 하게 한 후 적군의 저항능력을 무력화시켜 신속히 전쟁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그는 참모부 소속장교들을 전문교육기관에서 양성하는 제도를 도입시켰다, 이 덕분에 전문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참모들은 전체 명령체계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것과 더불어 적군에 비해 장교들의 일관성이 있어졌고 이것은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의 승리의 주요요인중 하나였다.

보불전쟁 승리 이듬해인 1872년 프로이센의 종신 상원의원으로 임명되는 영예를 누렸고, 1888년에 참모총장 직에서 물러났다. 3년 후 향년 91세로 타계했다.

4 트리비아

그가 죽은 지 15년 후인 1906년, 조카 소(小)몰트케가 그의 뒤를 이어 총참모장이 되었다. 그리고 삼촌의 업적을 다 깎아먹었다.

인터넷에서 '몰트케'란 이름으로 검색하면 1) 장발에 수염없는 깔끔한 장군, 2) 대머리에 콧수염이 달린 장군의 모습이 동시에 나와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본 항목에 나오는 대(大)몰트케는 전자다.